선물을 살 때는 늘 여러 번 고민한다. 욕심이지만 필요한 물건보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주고 싶다.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전하고 싶다. 낯 간지러운 말을 대신해서 작은 선물로 마음을 대신한다. 매번 그랬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하다. 선물하려고 코닥 M35 필름카메라를 샀다.
AI가 초점, 색감, 밝기까지 자동으로 조정해 주는 시대에 뷰파인더가 달린 필름카메라를 주문했다. 필름 사진 특유의 색감을 좋아했던 것을 기억해 뒀다. 선물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마음에 들면 좋겠다. 21세기에 태어난 이에게 건네는 20세기의 유물이다. 내게 익숙한 필름카메라 속 풍경을 공유하고 싶었다.
M35는 금속부품이 없는 플라스틱 바디라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은 모델이다. 렌즈 너머의 넓은 세상을 작은 뷰파인더에 담는 즐거움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일회용 카메라가 연상되는 디자인이 친숙해서 반가웠다. 그래서일까. 잊고 지냈던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
물가에 떠있는 노란 개구리밥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때는 동네마다 사진관이 몇 개씩 있었다. 졸업식이나 운동회가 대목이라면 대목이었지만 딱히 성수기와 비수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일 년 내내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쓰는 카메라는 달라도 인화하려면 결국 사진관에 가야 했다.
짧으면 하루 길면 나흘을 기다려서 받은 사진을 열어볼 때는 늘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록이 특별했던 시대였다. 소중한 순간을 사진 속에 담는다는 의미가 각별했던 시절이었다. 24장짜리 필름 한 통을 사서 사진을 찍으면 2,3장은 날려먹었다. 다들 첫 장은 버린다는 생각으로 셔터를 눌렀다.
눈이 빨갛게 물든다거나 모서리가 하얗게 날아가도 개의치 않았다. 삶에 한 번뿐인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기억에 담았다. 잘 나오면 잘 나온 대로 간직했고 엉망이 된 사진은 같이 보면서 다 함께 웃었다. 찢거나 버리지 않았다. 못 나온 사진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사진 앞에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사진은 말 그대로 그냥 사진이었다. 멋진 사진은 인화해서 액자에 넣었고 평범한 사진은 앨범에 넣었다. 버리는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기억이 갖는 의미는 달라도 추억의 색감은 똑같다. 5학년 때쯤 아버지는 내게 사진 찍는 법을 알려줬다.
잘 찍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필름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정말 간직하고 싶은 멋진 순간에 셔터를 누르면 된다는 가르침이 인상적이었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 보니 신기하다. 묵직한 캐논 FT QL을 들고 처음 찍었던 사진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애정을 담아서 찍는 사진이 최고라는 멋진 한마디만 가슴속에 남았다. 핸드폰 하나면 풍경부터 인물까지 손쉽게 찍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필름카메라의 매력은 아직 유효하다.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은 상식이지만 아날로그가 주는 불편함은 감성으로 통한다. 추억은 불황이 없다.
지난 시절이 품고 있는 아련한 감동은 대체재가 없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매력은 추억이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 색감과 온도는 그대로 남아있다. 90년대의 어른들은 가느다란 손목 스트랩이 달려있는 플라스틱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좋은 날이면 늘 사진 속에 행복한 순간을 기록했다.
그 시절 환한 미소를 담았던 필름카메라는 주인을 잃은 채 장롱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실패하고 실수하면서 사진이 점점 는다고 말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삶을 관통하는 통찰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사진 실력은 제자리인데 자잘한 그리움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