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보다 일찍 수원역에 도착했다. 희뿌연 구름이 머리 위 하늘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갑자기 눈이나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날씨다. 부산행 KTX를 타려면 한 시간쯤 남았다. 늦은 아침식사로 치즈와퍼를 골랐다. 모래 씹는 맛이다. 개찰구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매장 내부는 한산했다.
내릴 역은 동대구. 목적지는 장례식장이다. 몇 년 전 외삼촌 장례식 장에서 이모를 마지막으로 뵀는데 같은 곳에서 이모를 떠나보내게 됐다. 얄궂은 일이다. 오후에 카페에서 글을 쓰다 전화를 받았다. 부고를 접하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떤 감정은 분류하고 이름표를 붙이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상실감은 사실을 인지하는 시점이 아니라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수평선 끝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넋을 놓고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멍하니 서서 새까만 너울이 불안하게 일렁이는 모습을 본다.
어디로든 움직여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이유 든 간에 이별은 매번 괴롭다. 나이를 먹으면 조금 무던해질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잿빛으로 물든 먹구름 같은 감정이 내면을 뒤덮었다. 감정의 온도는 같지만 형태는 다르다. 어떤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족이 된 사촌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다 그만뒀다. 표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상실 앞에서 나는 말을 아끼게 된다.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감정이나 기억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입을 다문다. 초라한 방어기제다. 슬픔을 애써 삼키고 아픔을 억누른 채 평온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하지만 속에서는 쉼 없이 세찬 비가 쏟아졌다. 그런 내 모습이 차갑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슬픔 앞에서 무표정하게 변하는 얼굴은 그대로다. 서글서글하지는 않아도 적당히 능글맞은 나이가 됐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머리가 무거웠다. 기억들이 한데 모이더니 멋대로 뒤엉켰다.
내려놓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떼어냈더니 낡고 오래된 장면들이 퍼즐처럼 어지럽게 널브러졌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각을 맞췄다. 사랑받았던 기억들은 묵은 먼지를 뒤 짚어 쓰고 있었지만 온기는 여전했다. 세월이 흘러도 진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이름을 부르는 정겨운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무거운 마음과 대비되는 대구날씨는 화창했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는 길을 따라 걸었다.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례식 입구에 잠시 서있다 들어갔다. 빈소 앞에 걸려있는 사진은 환하게 웃고 있는데 내 얼굴은 정반대였다.
정신을 차리려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친척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이모를 떠나보냈다. 83년.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이다. 참석하지 못한 부모님을 대신해서 의미 있는 위로를 건네고 싶었지만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난생처음 만난 먼 친척을 본 아이들을 뒤로하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혈연보다 강한 인연은 없다. 세대가 지나 희석되더라도 경조사 앞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은 묘한 동질감을 부여한다. 사람은 떠나도 흔적은 남는다. 퉁퉁 부은 눈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는 한 무리의 가족들은 이모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유산이다. 한두 군데씩 닮은 구석이 있는 얼굴들이 이모가 가는 길을 배웅했다.
안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막막한 기분을 덜어내고 싶었다. 동대구역으로 곧장 가려다 말고 대명동을 돌아다녔다. 피로감과 탈력감이 들러붙은 허기를 털어내려고 돈가스를 사 먹었다. 이모가 사줬던 돈가스가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포크로 한 점씩 찍어 먹을 때마다 이모는 자기 몫을 덜어서 건네줬다. 우리 엄마의 하나뿐인 언니였던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참 많이 따뜻했다. 봄볕처럼 환한 미소가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주택가 너머로 기우는 겨울볕에 닿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하얀 빛을 한참 동안 보다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