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사회

by 김태민

죽음과 세금을 피할 수 없듯이 물가와 노화는 잡히지 않는다. 규모를 막론하고 외식업체들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물가에 고심했다. 고민 끝에 기업들이 내놓은 대책은 간단했다. 가격을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격인상을 해도 양과 질이 떨어지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 업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다. 맥도널드는 음식 재료를 바꾸고 여러 차례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던킨도너츠는 크기를 줄였고 코카콜라 한 병은 이제 5천 원대에 육박한다. 대형업체들의 상황이 이 정도라면 대다수의 소상공인들은 죽기 일보직전일 것이다.


월급 빼고 정말 모든 것들이 다 오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붉은 여왕 효과에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상유지라도 하려면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돈이 없다면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한다. 투잡을 뛰고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잠까지 줄여야 한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추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한다. 욜로를 외치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영끌해서 투자하고 집을 산 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제는 일확천금이나 인생 한 방에 대한 욕심 없이 근면하게 산 사람들까지 고통받고 있다. 365일 쉬지 않고 운영하던 많은 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다.


물가는 삶의 질과 직결된다. 가격이 급속도로 인상되면 구매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양과 질은 크게 하락한다. 똑같은 생활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돈이 들어가고 사람들 간의 격차도 더 빠르게 벌어진다. 이는 결국 노동과 소득에 대한 회의감까지 불러온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비용이 올라가면서 삶의 질을 규정하는 허들의 높이도 상승한다. 사람들은 경제상황으로 서로의 급을 더 세분화해서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를 구별하는 태도는 사회적인 차별로 변모한다. 소득격차로 인한 갈등과 차별은 인플레이션 시기에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


가난이 비인간화의 근원이라면 인플레이션이 만드는 격차는 비인간화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제성장기에 찾아오는 인플레이션은 사회구성원들의 의지와 국가의 경제정책으로 극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회복하기 힘든 질병이 된다. 자원이 없어서 사람을 갈아 넣어가며 발전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사람이 없다. 부모세대가 은퇴 후에도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고 자녀세대는 실망했다. 유병장수 시대를 살면서 죽기 전까지 일해야 하는 노년층은 현실에 절망했다. 실망과 절망은 할 수 있다는 소망과 잘될 거라는 희망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은 우리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빼앗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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