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시간

by 김태민

아침 운동을 끝내고 한가롭게 공원을 걸었다. 며칠간 비를 뿌렸던 짙은 비구름은 물러나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파란 하늘 위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예쁘게 피어난 구름이 보였다. 한 달간의 긴 장마가 끝난 목요일. 쨍한 햇살 아래 청량하게 퍼지는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같았다.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매미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공원의 가로수마다 매미가 서너 마리씩 붙어있었다. 그리고 나무 밑동 가까운 아래쪽에 매미들이 벗어놓은 허물이 보였다. 나무 아래 깊은 땅 속에서 십 년을 보낸 매미들이 남긴 세월의 흔적이다.


매미가 날개를 달고 세상을 여행하고 노래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기간은 2주. 깊고 어두운 땅속에서 보낸 기간에 비하면 짧은 찰나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미는 후회 없이 열렬하게 노래한다. 후회하고 아쉬워할 시간마저 아깝다는 듯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장마가 끝나도 불안정한 대기로 인해 며칠간 비가 내릴 때가 있다. 제법 굵은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져내려도 매미 울음소리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장대비가 만든 두터운 장막은 수많은 소리를 덮어버리지만 매미의 노래는 빗속을 뚫고 나간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갖고 있는 간절함과 절박함은 번식에 대한 원초적인 본능에서 비롯된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매미는 하나뿐인 짝을 만나 삶의 결실을 남기고 죽는다. 뜨거운 한여름 내내 쉬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의 결과물이다. 짧은 시간 불꽃처럼 살다가 떠난 자리는 새로운 생명이 찾아와 새로 채워 넣는다. 그리고 10년 동안 어두운 땅 속 깊은 곳에서 찬란한 여름을 꿈꾸며 살아간다. 유전자에 각인된 여름날의 풍경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늘 한결같은 설렘을 주는 바람은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매미는 땅 속을 나와 2주를 살지만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을 꿈을 꾸며 산다.


찬란한 순간은 짧다. 성공과 성취가 안겨주는 기쁨은 대부분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찾아오는 행복의 유통기한은 짧다. 삶은 순간의 행복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지루한 노력을 하고 고통스러운 반복을 견디는 시간이 모여 삶이 된다. 1퍼센트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인간은 99퍼센트를 차지하는 시련을 견딘다. 매미의 생애를 보면서 사람의 일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고 어두운 지면 아래에서 푸른 여름날을 그리며 사는 매미. 나도 인생에 놓여있는 시련을 견디게 해 줄 꿈이나 사랑을 품고 살아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플레이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