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서랍 속에 들어있는 전기면도기 충전기를 꺼내다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고등학생 시절 사용했던 mp3였다. 옛날 물건들을 죄다 서랍 맨 아래 넣어뒀는데 그때 같이 보관했나 보다. 호환되는 충전기를 꽂아놓고 5분 정도 지나자 전원이 들어왔다. 플레이리스트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이적과 김동률 그리고 이승열의 노래가 빼곡하게 들어차있었다. 뒤를 이어 재즈연주곡이 자리를 채웠다. 어렸을 적의 나는 재즈를 정말 좋아했다. 빌 에반스나 키스 자렛의 재즈를 매일 들었고 래리 칼튼과 팻 매쓰니의 기타 연주도 좋아했다. 몇 곡을 재생하고 넘기기를 반복하다 갑자기 너바나가 튀어나왔다.
묵직한 기타 기프를 듣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Smell like teen spirits>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수명인 너바나와 노래 제목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가사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강렬한 스타트와 함께 이어지는 사운드가 가슴속을 강하게 때렸다. 시원하면서 기괴했다. 분노와 우울이 뒤엉킨 느낌의 노래였다. 그렇게 나는 너바나를 만났다. 잘생겼지만 꾀죄죄한 행색의 커트 코베인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앨범에 수록된 다른 노래들도 좋았지만 가장 선명한 인상을 남긴 것은 첫 번째였던 <Smell like teen spirits>였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세월의 서랍 속에 가지런히 정리된다. 그렇게 대부분은 잊히지만 정말 강렬한 기억은 갑작스러운 계기로 순식간에 되살아나기도 한다.
커트 코베인이나 너바나를 아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또렷한 스타일과 정체성 강한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종종 들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한창 그림을 그리면서 살 때 커트 코베인의 그림을 본 적 있다. 우울함보다 음울함에 가까운 색감으로 뒤덮인 낙서와 스케치가 눈길을 끌었다. 음악과 그림 그리고 글은 모두 같은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너바나의 음악이나 커트 코베인의 그림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담고 있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복잡한 감정. 자신의 내면을 갉아먹으면서 파고드는 광기와 우울이 그의 본질이자 본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술 앞에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답은 어차피 작가도 모른다. 그냥 보고 듣고 읽고 느끼면 그만이다.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음악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대단한 진리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바나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힘을 좀 빼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의미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정답을 발견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한 번씩 고민하고 고심하느라 무거워지는 내 머리를 싹 비워줬던 너바나의 노래. 커트 코베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인상은 여전히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