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와 위

by 김태민

커피와 치즈는 안 어울린다. 그러나 커피와 치즈케이크는 잘 어울린다. 단음식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치즈케이크를 먹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커피를 곁들인 치즈나 치즈케이크와 같이 먹은 커피나 배속에 들어가면 별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맛은 입 속에서 벌어지는 축제다. 그러나 미각이 자아내는 감각의 환희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사라진다. 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장은 아름다운 맛의 조합을 느낄 수 없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다채로운 미식의 향연은 뱃속에 들어가면 찌꺼기가 된다. 음식물이 소화되는 데는 20시간 가까이 소요되지만 입에서 맛을 느끼는 시간은 순간에 불과하다.


치즈케이크를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선물 받은 치즈케이크를 하룻밤 냉장실에 넣어뒀다가 꺼냈다. 홍차를 아침에 마셨기 때문에 차대신 커피를 먹기로 했다. 커피는 뜨거운 에스프레소보다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프랜차이즈의 공장제 완제품이 아니라 손수 만든 케이크라 모양도 예뻤다. 케이크 위에 피칸과 호두를 얹은 하얀 치즈크림이 올라가 있다. 힘을 줘서 포크를 찔러 넣어야 할 정도로 반죽의 밀도가 높았다. 설탕과 계피를 넣어서 졸인 과일이 들어있어서 씹는 맛도 좋은 편이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베이스로 만들었지만 뉴욕 치즈케이스 스타일의 부드럽고 풍부한 질감까지 잘 살렸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치즈크림에 들어있는 유지방의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입 안에 퍼진다.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충분히 맛을 즐기고 넘기면 혀가 할 일은 끝났다. 맛과 식감을 음미하고 꼭꼭 씹어서 꿀꺽 삼키는 순간 양분과 찌꺼기로 분리되는 여정이 시작된다. 뭉개진 치즈케이크는 커피와 뒤섞여 식도를 타고 천천히 내려간다. 위장의 입구가 열리면 점심에 먹은 오차즈케와 계란말이 위로 떨어진다. 위액에 범벅이 된 밥알과 계란은 아직 형태가 남아있다. 견과류와 크림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었던 치즈케이크는 위액이 닿으면서 부드럽게 풀어진다. 불과 몇 분 전에 입에서 뇌로 기분 좋은 달콤함을 전달했던 케이크는 완전히 사라졌다. 몇 시간이 지나면 끈적한 액체가 되어 소장으로 내려갈 것이다. 혀는 잠깐 일하지만 그 아래 모든 소화기관은 보이지 않는 몸속에서 하루종일 일한다.


식사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과정이 훨씬 더 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은 음식을 섭취하고 맛을 확인하는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구강과 위장은 서로 정반대의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입에서 즐거운 음식은 장을 괴롭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찰나의 쾌락을 위해 긴 소화과정에 부담을 주는 행동을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작 오랜만에 케이크를 먹고 잠시 행복했지만 오늘 밤 내 장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을 것 같다. 저녁은 위장에 좋은 청경채를 데쳐서 양배추쌈을 먹어야겠다. 혀와 위가 모두 만족할만한 방법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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