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범죄는 안전한 일상을 침범하는 것이다. 대낮에 대도시 한복판에서 사람이 칼에 피습당해 죽었다. 신림역 살인사건과 서현역 흉기난동사건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안전에 대신 상식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치안과 공공안전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불렸던 대한민국의 입지가 무너졌다. 길을 가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위협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안전이라는 상식이 한순간에 무너지자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신뢰처럼 안전도 일종의 사회적 자원이다. 당연한 듯 느끼는 평범한 일상은 우리 사회가 보장하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통해 유지된다. 공권력과 사회안전망은 물리적인 안전과 생애주기적인 안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국가안전과 사회안정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불안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불안은 안전이 무너진 자리로 빠르게 치고 들어온다. 불안은 불신과 만나 검증되지 않은 루머들을 양산한다.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는 사람들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재생산하고 다시 빠르게 소비한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대중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하기 전까지 불안과 불신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그동안 쌓여있던 사회적 불만과 만나 개혁과 개선 같은 정치적인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문제의 원인이 해결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정비와 보수공사 그리고 제도의 개선 같은 접근법으로 고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인간의 마음은 사회시스템으로는 찾아낼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미지의 맹점이다.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뒤틀린 증오와 왜곡된 감정이 만들어내는 폭탄을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방이 최선이라지만 범죄경력이 없는 일반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뒤틀린 사고방식은 뚜렷한 이상증세를 보일 때도 있지만 평범함에 숨어 있을 때가 더 많다. 시스템을 통해 비정상적인 사고방식과 위험행동을 보이는 위험군을 지정할 수도 없다. 개인정보와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사회제도와 공권력을 국가가 손에 틀어쥔다고 해도 범죄는 일어난다. 유럽의 선진국이나 미국도 답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폭탄테러와 총기난사 앞에서 그들이 자랑하는 범죄예방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서운 럭비공이다. 살의를 품고 있는 인간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공격보다 방어가 훨씬 더 어렵다. 총기는 15세기에 등장했지만 제대로 된 방탄복은 수백 년이 지나서 개발되었다. 한 명의 공격수를 막으려면 그보다 3,4배 많은 수비수가 달려들어야 한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써가며 인적자원을 확충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자는 달랑 칼 한 자루만 들고 거리로 나가 안전이라는 사회적 자원과 치안시스템을 박살 내버린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 한 명을 제외한 온 나라가 피해를 입는다. 일상과 상식을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묻지마칼부림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적인 테러다. 이제 일상에서 범죄를 조심하던 시대는 끝났다. 범죄가 아니라 테러를 경계해야 하는 세상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