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방에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추리소설이나 영화에서 접했던 살인예고장이었다. 사진 속에는 인터넷 여기저기서 올라온 여러 건의 살인예고가 정리되어 있었다. 강남역과 잠실역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대상으로 범죄를 예고한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르면서 묻지마 살인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범죄가 일어나면 으레 나타나는 관심종자들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원고작업을 하다 잠깐 쉴 겸 TV를 틀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흉기를 소지한 남성이 검거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어안이 벙벙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나 볼법한 내용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신림과 분당에서 일어난 묻지마칼부림은 단순범죄가 아니다. 불특정다수에 대한 증오는 이제 범죄동기로 볼 수 없다. 묻지마범죄를 사회적으로 도태한 실패자들의 왜곡된 분노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묻지마살인은 테러다. 범죄가 진화하면 테러가 된다. 테러는 자신만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극단적인 폭력이다. 타협도 불가능하고 설득도 먹히지 않는다. 범죄에 대한 예방책이나 감시체계 그리고 사회안전망까지 테러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뛰어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도 대내외적인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폭탄이나 총기 대신 흉기를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 동기나 방식은 동일하다. 대상을 물색하고 계획을 짜고 검거 후의 무덤덤한 반응까지 똑같다.
테러는 성공을 위해서 연구하고 비슷한 사례를 분석하면서 범행을 준비한다. 최근의 묻지마칼부림 사태는 누군가에게는 데이터가 되었을 것이다. 더 효과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고 불특정다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방법을 누군가는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화학약품이나 독극물로 수법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수도권 내부에 제약회사와 화학기업들이 널려있다. 대상도 잘 사는 사람이나 잘 나가는 이들로 바뀔 수 있다. 묻지마범죄는 일종의 증오범죄였지만 앞으로의 테러는 뚜렷한 목적과 표적을 가질 것이다. 본인의 욕망이나 주장을 반인륜적인 인명살상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테러범에게 테러는 범죄가 아니라 성취다. 잡혀도 당당하고 뉘우치거나 반성하지도 않는다. 모든 정부는 테러범과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테러범 역시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살인예고장이 현실이 된 뉴스를 보면서 나는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세이료인 류스이가 쓴 추리소설 <코즈믹>에서 본 내용이 지금의 상황과 묘하게 비슷했다. 광신도들이 예고장을 보내고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다. 그들의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궤변일 뿐이었다. 앞으로 나타날 묻지마테러 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울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상대로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테러는 그런 상호작용에 실패한 사람들이 벌이는 패악질이다.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단절하고 폭력을 선택한다. 본인들에 대한 문제인식이나 반성 그리고 개선은 찾아볼 수 없다. 원인을 세상으로 돌리고 구성원들을 향해 살육을 저지른다. 세상을 향한 가장 비뚤어진 표현방식인 테러는 불안과 공포로 온 세상 사람들을 단절시켜 버린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