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by 김태민

살면서 딱 한 번 눈앞에서 새똥 맞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 20년이 넘은 옛날일이지만 그 짧은 순간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대학생시절 기를 쓰고 외워야 했던 사회보장법이나 스키너의 행동주의이론 같은 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배웠던 이론과 법률은 죄다 사라지고 친구가 새똥 맞은 장면만 강렬하게 남았다. 중학교 2학년 체육대회 때였다. 우스꽝스러운 체육복을 입고 반별로 운동장에 앉아 있었다. 사방이 밝았지만 해 주위로 구름이 끼어있어서 묘하게 운동장 주위가 어두웠다. 알록달록한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북적이던 그때. 새 한 마리가 보였다.


회색빛이 도는 제법 큰 비둘기가 낮게 날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떨어지는 하얀색 물체를 봤다. 벌레가 붙었나 싶었는데 하얀 물체가 하나 더 떨어졌다. 친구 다리에 새똥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 순간 친구는 소리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빨간 체육복 바지 위에 선명하게 남은 하얀 점. 그 하얀 점은 친구의 까만 머리카락에 들러붙어서 묘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기겁을 하면서 손으로 새똥을 털어내는 모습에 너나 할 것 없이 크게 웃었다. 옆에서 건네준 휴지를 받아서 새똥을 닦아낸 친구도 처음에는 웃지 말라고 소리치다 어이가 없어서 웃기 시작했다. 세상의 어느 누군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똥을 맞는 경험을 한다.


만화책에나 등장할 법한 장면을 눈앞에서 봤던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나이를 먹는다. 세상은 정말 별의 별일이 다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상상은 곧 누군가의 현실이 된다. 허구처럼 느껴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진실일 때도 있고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사연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사고를 당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도 있다. 큰 불행을 만나서 몇 년간 고생했던 지인이 했던 인생은 교통사고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잘살아도 누가 들이받을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들이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서로 거세게 충돌하면서 쌍방과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어서 사는 게 교통사고 같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픔의 깊이나 고통의 크기를 내가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교통사고와 인생이라는 단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보인다. 알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인간의 삶은 사고 아니면 사건이다. 사고가 일어나거나 사건이 발생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도 예측할 수 없다. 징후나 전조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행운이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알고 싶어 한다. 복을 바라는 신앙이나 앞날을 알려준다는 점술에 사람들이 넘어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건이든 사고든 어차피 터질 거라면 대비하려고 애쓰기보다 수습하는 정신력을 갖고 싶다. 본인이 겪은 절망을 교통사고라고 정리했던 지인처럼 견디면서 끝내 이겨내는 그런 견고함을 가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은 여전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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