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노인

by 김태민

노트북 대신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업공간의 제약이 사라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카페 대신 이제는 매일 도서관을 찾는다. 시원하고 조용한 데다 글을 쓰다 피곤하면 책을 꺼내 읽으면 된다. 활자중독자인 나에게 이보다 좋은 작업공간은 없다. 매일 한 곳만 가면 너무 익숙해져서 늘어질까 싶어서 여러 곳을 순회하고 있다. 집 근처 시립도서관을 간 다음날은 집 앞 행정복지센터 내의 작은 도서관을 이용한다. 관내에서 좀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의 도서관에 갈 때도 있다. 어느 도서관을 가든 늘 마음이 편안하다. 글이 잘 써지는 곳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곳은 없다.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면서 도서관을 이용하다 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 도서관이든 책 읽는 사람들은 거의 다 어르신들이었다. 책을 대여해 가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앉아서 책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더위와 추위를 피해서 아니면 혼자 집에 있기 싫어서 노인들이 도서관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독서는 의지를 필요로 하는 활동이다. 코 앞에 도서관이 있더라도 책 한 권 빌리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도서관에 발을 들일 수 있다. 독서는 배움에 대한 열의와 지식에 대한 욕구 그리고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이 전부 필요한 활동이다.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읽는 노인들은 그런 의지와 열정이 식지 않은 강인한 사람들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반성했다.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 때도 매일같이 저렇게 도서관에 나올 수 있을까? 안경과 돋보기를 손에 들고 해가 질 때까지 책을 볼 수 있을까? 스스로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웠다. 노년에도 도서관까지 나올 수 있는 건강이 필요하고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체력도 요구된다. 책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문해력도 중요하다. 글씨를 분간해 가며 읽을 수 있는 시력도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살아있어야 된다. 늙음은 퇴화가 아니라 생존이며 늙었다는 말은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의미다. 나이 들면서 잃는 것도 많지만 그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얻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도 빌려 읽는 사람도 점점 줄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그럼 집이나 직장에서 책을 읽을까? 출퇴근 시간의 버스와 지하철 속 풍경은 늘 똑같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직장으로 향한다. 다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이느라 여유가 없다. 독서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책상 앞에서 책을 펼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생성 AI가 필요한 일을 모두 처리해 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읽고 쓰고 말하고 정리하는 일까지 AI의 손을 빌리는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책을 손에 잡을 수 있을까? 책 읽는 노인의 모습은 머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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