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오래전에 이해되지 않았던 의문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연이 끊긴 누군가와 있었던 의문이 해소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진실을 깨닫기도 했다.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의 정답을 알게 된 적도 있었고 납득할 수 없었던 사건을 받아들이게 된 적도 있었다.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반나절 만에 납득할 때도 있다. 나에게 글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지난 시절 모르고 덮어뒀던 문제의 정답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의 감정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한다.
과거에 단절된 문장을 천천히 이어나가는 작업을 한다. 많은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을 하나씩 문장 사이에 넣어본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실, 모른 척 외면했던 진실과 혼자만 아는 부끄러운 사실까지. 하나씩 정리해서 단어와 문장으로 다듬어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지난날을 이해하고 과거를 납득하고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동시에 나의 잘못을 회개하고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기도 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한다. 지난날의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글은 누군가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글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글 속에는 내가 들어있다. 다양한 주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쓰더라도 그 안에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고 느낀 감정들이 숨어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게 어려운 것은 기다려주는 일이다. 우리는 남들 따라가야 한다는 속도만 신경 쓰느라 이해의 시간을 간과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시도가 중요하다. 글을 쓰면서 나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었다. 후회하고 미워하고 외면했던 것들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경험을 했다. 생각해 보면 늘 조바심과 불안을 품고 살았다. 늦었다는 생각과 극복하기 힘든 패배감이 과거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지난날의 실패와 좌절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의 내가 천천히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렸다. 나조차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을 뒤늦게 인정했다. 이제 더 이상 조바심 낼 필요가 없었다.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이상 부끄러운 것은 없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다.
글쓰기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성공한 수필가도 아니다. 그저 삶을 기록하고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 어제의 내가 지은 글은 오늘의 내가 쉴 집이 된다. 오늘 내가 쓴 글은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가 될 것이다. 글은 내 인생에 주는 선물이자 유산이다. 예전에는 왜 글을 쓰는지 스스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글은 나의 과거와 현재가 화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글로 만든 다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잇는다. 그리고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 준다. 내가 글을 만들고 글은 다시 나를 새롭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