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넨셔츠

by 김태민

여름 내내 나는 리넨셔츠를 입고 산다. 글을 쓸 때나 외출할 때 심지어 잠잘 때도 입는다. 하루에 3벌 정도 셔츠를 갈아입는다. 땀에 젖으면 바로 손빨래해서 옥상의 건조대에 널어버린다. 뜨거운 한낮의 땡볕을 1시간만 받으면 셔츠는 바짝 마른다. 쾌적하고 깨끗하게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리넨보다 좋은 원단은 없다. 마의 한 종류인 아마로 만든 리넨은 통기성이 좋아서 건조가 매우 빠르다. 원단의 내구성도 좋다. 입고 나서 곧바로 물빨래만 해주면 변색될 일도 없고 5년 10년 입어도 튼튼하다. 뻣뻣하고 까끌거리는 촉감이 단점으로 꼽히지만 오래 입다 보면 점점 부드러워진다.


해마다 한 벌씩 사모으다 보니 옷장에 리넨셔츠가 여러 벌 걸려있다. 이번 달에 새로 산 셔츠도 있고 10년 전에 구입한 것도 있다. 면 소재의 셔츠는 2년도 못 가서 버리게 되지만 리넨은 5년은 거뜬하다. 잘만 관리해 주면 정말 10년 이상 입을 수 있다. 해마다 여름기온은 계속해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여름은 옷 입기 난감한 계절이다. 예전에는 여름이 되면 시어서커 재킷을 꺼내 슬랙스에 피케셔츠와 함께 입었다. 여름에도 열심히 멋을 내고 다녔지만 폭염 앞에 패션은 사치에 불과했다. 지금은 5월부터 10월까지 리넨셔츠를 교복처럼 입고 산다. 겨울멋쟁이 얼어 죽고 여름멋쟁이 쪄 죽는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더우면 멋이고 옷이고 다 소용없다.


매년 찾아오는 극심한 폭염 속에 나는 심미성을 버리고 실용성을 택했다. 리넨셔츠를 대체할 수 있는 옷은 없다. 면 소재의 반팔티셔츠는 땀이 나면 살갗에 들러붙는다. 여름용으로 만든 재킷이 아무리 통기성이 좋아도 맨몸에 리넨셔츠 한 장보다 시원할 수는 없다. 긴바지도 재킷에 맞춰 신었던 로퍼도 모두 사라졌다. 질 좋은 가죽구두를 중고장터에 모두 팔아버리고 나서 나는 여름 내내 플립플랍이나 샌들을 신고 다녔다. 가벼울수록 편하고 단순할수록 좋다. 옷이나 신발이나 똑같다. 스타일을 바꾸고 나서 아니 스타일을 버리고 나서 여러모로 편해졌다. 패션은 분명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몸이 편해야 맘이 편하다. 기분 내려고 차려입었는데 옷에 신경 쓰느라 기분이 안 좋아지면 멋을 내는 의미가 없다.


비우면 가벼워진다. 몸도 마음도 옷장도 비울수록 가벼워진다. 리넨셔츠 7벌을 제외하면 겨울용 코트와 패딩이 내가 가진 옷의 전부다. 필요하면 그때 사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건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다. 돈만 있으면 다 구할 수 있고 살 수 있다. 그러나 갖고 싶은 것과 정말 필요한 것은 다르다. 꼭 필요한 것들을 구별하는 눈을 이제야 갖게 된 것 같다. 리넨셔츠 6벌이면 긴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운동화 세 켤레, 반바지 4벌 그리고 햇빛을 막아줄 모자 몇 개. 여름 나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지만 어느새 입추를 지났다.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래된 리넨셔츠를 돌려 입으면서 더운 여름을 이겨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로 만든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