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공상

by 김태민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쓸데없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상관없다. 원래 진짜 재미있는 일은 대체로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세상이 전부 뒤집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중력의 방향이 반대가 되면서 지면에 붙어있던 모든 것들이 하늘 저 편으로 사라진다. 도시와 건물은 땅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가고 바다가 하늘로 쏟아지면서 사라진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지구가 인간을 공격하는 공상도 자주 했었다. 환경파괴가 극심해지자 지구는 인간을 기생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자연재해를 동원해서 인간을 없애기로 한다. 거대한 해일과 지진 그리고 태풍을 동원해서 인류를 쓸어버린다. 그럼에도 과학기술로 인간이 생존 가능성을 찾아내자 자연은 다른 수를 들고 나온다. 인간을 멸종시키기 위한 새로운 종을 만들어낸다.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서 활동하는 백혈구처럼 인간만을 사냥하는 거대한 괴수는 문명을 삽시간에 붕괴시켜 버린다. 환경파괴와 자연재해가 일상이 된 현실은 이런 공상에 현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상할수록 현실적인 재난의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가장 많이 했던 상상은 꿈과 관련된 것들이다. 꿈이 평행세계를 잇는 통로라고 생각했고 꿈을 통해서 다른 세계의 자신을 볼 수 있다고 상상했다. 다른 버전도 있다. 인간은 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다. 그래서 전인류의 무의식이 하나로 모여있는 거대한 집합체가 존재한다. 냉전시대의 경쟁을 통해 강대국들은 이 거대한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했다. 선점하기만 하면 전인류를 통제하는 독점적인 권한을 손에 넣게 된다. 잘 다듬기만 하면 꿈과 무의식의 영역을 배경으로 좋은 스토리를 뽑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멋진 소설 한 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에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시간낭비라는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있었다.


아이들이 열심히 상상해서 어른들에게 늘어놓으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퉁명스러운 반응에 많은 아이들은 상상하는 일을 스스로 그만두었을 것이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누구나 현실을 살게 된다. 순수함과 창의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상상력을 동심의 산물로 유치하게 취급했던 무심한 어른들은 많은 것을 빼앗았다. 일언지하에 무시했던 아이들의 상상 속에 기상천외한 이야기나 획기적인 발상이 적어도 몇 개쯤은 있었을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이 누리고 사는 문명의 기술은 대부분 상상력에서 온 것들이다. 쓸데없는 일 벌이지 말라는 핀잔을 듣고 포기했다면 전기와 자동차 그리고 컴퓨터와 비행기까지 전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과 공상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인류가 상상하는 일을 멈춘다면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상상하고 공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상상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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