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서 모닥불을 피울 때마다 늘 타고 남은 재를 생각한다. 눈은 이글거리는 불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회색빛의 재만 떠오른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사그라들고 나면 남는 것은 재뿐이다. 바짝 마른 장작이 품고 있던 발열량은 화염과 함께 사라진다. 나무속에서 뛰쳐나온 불은 노란 불씨를 토해내고 먼 곳까지 빛을 흩뿌리다 끝내 소멸한다. 불길이 잦아들면 그 속에서 반쯤 허옇게 변한 나무토막이 드러난다.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새까만 나무토막은 가느다란 연기를 뿜고 있다. 집게로 한 번 툭 건드리면 힘없이 바스러지면서 쥐고 있던 불씨 몇 개를 뱉어낸다.
밤이 새벽으로 넘어갈 때쯤 마지막으로 품고 있던 열기마저 떠나고 나면 토막은 재가 된다. 이른 아침 텐트에서 나와 모닥불이 놓여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식어버린 하얀 재가 그 자리에 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 타고 남은 재를 보면서 불을 떠올린다. 하늘 높이 불씨를 날려 보내는 불의 춤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은 불과 닮았다. 타고나면 재가 된다는 점에서 나무나 사람이나 똑같다. 한 줌이든 한 움큼이든 그전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 타고 남은 재를 봐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열심히 살아봐야 한 벌이다. 치열하게 살아봐야 한 칸이다. 죽어서 입는 옷은 한 벌이고 관이든 납골당이든 허락되는 공간은 한 칸뿐이다. 욕심은 살아있을 때만 부릴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순간 욕망도 욕심도 의미를 잃고 사라진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저 산 사람의 영역이다. 놓고 떠나는 것만이 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 크게 타오르는 들불이나 작은 솥 안에 붙은 화톳불이나 때가 되면 다 꺼진다. 타다 남은 자리의 재가 많고 적음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사라질 때는 모두 똑같이 겸손해진다.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없고 남기고 갈 수 있는 것 또한 없다. 이름이나 업적이나 모두 재와 같다. 불꽃이 사라진 재는 다 타고 남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아이를 보면 노년의 모습이 그려지고 노인을 보면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타고 있는 불이나 타다 남은 불이나 모두 언젠가는 재가 된다. 하지만 불은 아름답다. 타고나면 결국 재만 남겠지만 불은 찬란한 빛과 열을 내면서 춤을 춘다. 끝을 알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름답다. 삶은 끝이 있어서 의미가 있다. 모두가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지만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별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사랑한다. 삶은 유한하지만 소중한 것들은 유통기한이 없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마음속의 등불이 되어 오래도록 남는 것도 있다. 사라진 것들을 사랑할 수 있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사랑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다. 불은 재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밝은 빛과 따스한 온기도 함께 전달한다. 그래서 불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