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입추였지만 한낮 기온은 36도를 넘겼다. 운동을 마치고 공원을 지나가는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 대신 매미울음소리가 텅 빈 공원을 채우고 있었다. 머릿속까지 울리는 맹렬한 울음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에 달린 매미 몇 마리를 쳐다봤다. 매미들은 다급하게 필사적으로 우는 것 같았다. 곤충과 동물들이 갖고 있는 생체시계는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제멋대로 널뛰는 기후변화 속에서도 주어진 할 일을 한다. 매미는 어렴풋이 다가오는 가을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폭염 속에서 맞이한 입추였지만 매미는 자신의 계절이 곧 끝난 다고 여기는 것 같다.
땡볕을 피해 고개를 돌리다 맑은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적란운을 발견했다. 영화에서 본 높게 솟은 구름은 외국의 풍경처럼 낯선 모습이었다. 여름은 익숙한 얼굴로 다가왔지만 모르는 사이에 표정을 바꿔버렸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여름에 대한 상식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연일 동남아보다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습도는 일본보다 심한 수준이다. 장마철이 지났지만 습도는 8,90%를 넘나 든다. 폭염경보는 전국단위로 발효되고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모습을 감춘다. 한여름의 소나기 대신에 스콜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새로운 형태의 강우가 등장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대신에 기후가 변한다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 10년 전의 여름과 올해 여름은 많이 달라졌다. 폭염과 열대야 일수는 10년 동안 계속해서 늘어났다. 온열질환과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증가했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날씨는 얼마나 더 이상해질까? 재작년에는 너무 더워서 여름철 모기수가 급감했다. 대신 가을부터 겨울까지 뒤늦게 모기들이 기승을 부렸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은 유례없는 장마 때문에 여름 내내 잿빛 하늘을 보고 살았다. 계절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봄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만 늘어나고 있다. 날씨는 생활의 불편이 아니라 이제 생존의 문제를 야기하는 위험요소다. 세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24 절기는 이제 이름만 남은 것 같다. 입추를 지나 처서를 맞이해도 여름처럼 덥다. 경칩 너머 춘분에 도달해도 날씨는 겨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절기에 맞춰서 먹었던 세시음식들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 아이들은 봄을 기념하고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먹는 세시음식이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 기후가 변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변화에 적응하며 살겠지만 한 번 달라진 것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 동안 창문 너머 매미의 필사적인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미는 적어도 자신의 계절이 끝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은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래서 위기 속에서도 아직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