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우

by 김태민

나는 천둥소리를 좋아한다. 번쩍이는 번개와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 뇌성을 정말 좋아한다. 비바람은 선택사항이다. 마른하늘에 번개구름이 저녁 내내 천둥소리를 쏟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원한 장대비와 함께 땅 위로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도 좋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나는 시끄러운 소리는 싫어한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귀를 틀어막고 음악을 들을 때도 낮은 음량으로 듣는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하게 되면서 그마저도 거의 듣지 않는 편이다. 소음에 민감한 내가 왜 천둥소리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하늘을 가르는 파열음을 나는 시원한 소리로 받아들인다.


비바람을 동반한 뇌우가 주는 이미지와 분위기를 내가 좋아하게 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추리소설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다. 초등학생 시절 셜록홈즈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많이 읽다보다 보면 어느 정도 작품의 스타일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범죄종류나 트릭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까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하늘 아래 없는 법이다. 추리소설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무대와 배경 역시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을 갖고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은 바로 비 오는 밤이다.


번개가 번쩍이면서 시체가 드러난다거나 비바람 속에서 범인을 추격하는 씬은 추리소설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립된 저택이나 외부와 단절된 섬도 자주 등장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칠 때 극대화 된다. 장대비와 돌풍을 동반한 뇌우가 없다면 고전적인 스릴러의 맛은 대폭 반감된다. 천둥과 번개 그리고 비는 고전적이면서 친숙한 공포감을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다. 공포영화나 스릴러를 볼 때 비 오는 장면이 빠지면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든다. 클리셰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지만 원래 클래식과 클리셰는 한 끗 차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는 뻔한 클리셰가 친숙한 클래식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추리소설과 공포영화 그리고 미스터리스릴러를 워낙 많이 보다 보니 뇌우가 친숙해진 것 같다. 한여름의 시원한 빗소리도 좋고 잔잔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봄비도 좋다. 들녘을 적시는 가을비나 이른 새벽의 는개도 좋다. 그래도 가장 좋은 비는 역시 뇌우다. 비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천둥소리만큼 가슴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어린 시절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뇌우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천둥소리를 들으면 그저 반갑다. 잠이 안 올 때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소리를 스피커로 틀어놓고 잔다. 올여름은 많은 비가 왔지만 제대로 된 뇌우를 만나지는 못했다. 호우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만큼 만남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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