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by 김태민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반납할 책을 들고 집을 나섰다. 광복절 징검다리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 동네는 조용했다. 한산한 골목길을 걷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모처럼 온 동네가 고요한 토요일이었다. 느긋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 코앞까지 왔다. 차들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점이 의아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서관 앞을 지나는 2차선의 아스팔트를 새로 까는 포장공사였다. 도로는 잿빛의 속살을 드러낸 채 전부 뒤집어져있었다. 아스팔트는 수명 10년이 채 안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연식이 다하면 포장공사를 통해 교체할 수밖에 없는 소모품인 것이다.


건설회사를 다녔던 중학교 동창은 승진하면서 도로건설과 관련된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아스팔트에 관해서 재미있는 사실을 들려줬다. 도로포장에 아스팔트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정작 아스팔트의 함유량은 5%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료의 대부분은 돌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골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스팔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소량의 아스팔트가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유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석유화합물인 아스팔트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들은 사실 눈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집단내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 조용하게 사람들을 통솔하고 계획을 진행하며 영향력을 발휘한다. 케이크와 디저트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재료인 바닐라빈도 그렇다. 껍질 속에 들어있는 건조한 바닐라빈 소량만 첨가해도 향이 크게 살아난다. 볼펜으로 콕 찍은 것처럼 작고 검은 알갱이지만 풍미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스팔트 역시 도로포장재의 적은 양을 차지하지만 기능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5% 들어있을 뿐이지만 당당하게 이름을 쓴다는 점을 보면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영향력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힘이나 사물이 주변 사물이 주는 영향이나 비슷하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능력은 정말 놀랍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는 사람들의 선입견이나 편견까지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일상에서도 작은 차이가 확연하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례를 접할 수 있다. 국물요리를 먹을 때 식초 한 방울을 첨가하면 감칠맛이 살아난다. 여름철 빨래를 모아서 돌릴 때 구연산을 조금만 넣어도 불쾌한 냄새가 사라진다. 적은 양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글에도 그런 힘이 있다. 짧은 문장과 몇 개의 단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학의 힘을 언젠가 나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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