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면 생각한다.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을 살면서 전부 다 읽을 수 있을까? 작년 한 해 독서량은 80권 정도였다. 1년 단위로 평균을 내보면 많아봐야 100권 내외다. 정말 많이 읽는다고 해도 200권을 넘긴 적은 단 두 번뿐이다. 독서노트를 쓰거나 감상문을 써가며 책을 읽었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결국 지난 10년간 읽은 책을 다 합해도 천 권 정도일 것이다. 숫자로 보면 많아 보이지만 시립도서관의 큰 책장 하나에 보통 700권의 책이 꽂혀있다.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의 양은 책장 한 개를 겨우 채우는 정도의 양에 불과하다.
평생 책을 열심히 읽는다 해도 일생동안 도달할 수 있는 독서량은 5천 권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근시에 난시까지 있는 나는 남들보다 일찍 노안을 맞이할 것 같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읽기 전에 분발해서 책을 많이 읽어두려고 한다. 요즘은 40대에 노안이 찾아오는 경우가 흔하다. 스마트기기를 매일 같이 쓰고 모니터를 보면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독서량의 상한선이 명확하다면 그 안에서 좋은 독서를 하는 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도 안 자고 쉬지 않고 읽어도 이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면 편안하게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과거에는 나에게 의미 있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좋은 책의 기준은 없다. 좋은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나 진리는 책 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내면 속에 있다. 읽고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는 것은 독자의 영역이다. 인류의 스승으로 불리는 현인과 석학들이 남긴 책을 보고 모두가 내적 성장을 이룩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책을 읽어도 삶의 진리를 깨우칠 수 있고 만화책에서 본 장면이 인생의 큰 감동으로 남기도 한다. 책 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 책의 가치는 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명필에게 붓은 필요 없다. 좋은 글씨는 붓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좋은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나면서부터 독서가 즐거웠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가도 편식하는 일 없이 손길이 닿고 눈길이 가면 무조건 읽었다. 실패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계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우주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늘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책 속으로 들어간다. 모든 책들이 새로운 세상을 품고 있었다. 나쁜 책은 없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 기피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런 책 속에서 자신만의 깨달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책은 읽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만화경이다. 좋은 책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손에 잡히면 눈에 들어오면 그냥 읽으면 된다. 읽기만 하면 책 속의 또 다른 세계가 나를 기꺼이 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