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by 김태민

비 오는 저녁 친구와 마주 앉아 순댓국을 먹고 있었다. 가늘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공기도 선선했다. 더위가 물러간 금요일 밤이라 국밥집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허기를 달래고 막걸리 한 잔을 주고받았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아파트 부실시공과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집이 부실공사로 얼룩졌다는 사실은 국민적인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최근 아파트 문제로 인한 가격하락을 막으려고 입주민들이 고군분투한다는 말도 돌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재산 목록 1호인 아파트 한 채는 인생과 같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면 입단속을 하고 내부정보를 통제하는 행동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아파트가 갖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행태를 가지고 대화하다 친구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목숨보다 아파트값이 더 중요한 게 현실이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몇 년 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밤중에 크게 싸우는 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졌다. 늦은 밤 잠이 깬 친구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창문 너머를 쳐다봤다. 그 순간 하얀 물체가 빠르게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뒤이어 둔탁한 충돌음이 들렸고 곧바로 위층에서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란 친구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아파트 공용현관 앞 바닥에는 커다란 핏자국이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간밤의 사건은 악몽이 아니라 핏빛처럼 선명한 현실이었다.


놀라운 점은 지역뉴스나 신문 그리고 방송에도 투신자살사건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네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경찰차와 소방차도 출동했었다고 한다. 라이트와 사이렌을 끄고 와서 친구는 몰랐던 것이다. 119 구급대가 시신을 수습했고 아파트 현관 앞의 선명한 핏자국은 경비아저씨가 아침 내내 치웠다고 했다. 청소용 솔과 대걸레로 묵은 때를 벗기듯이 닦아냈고 며칠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민들은 철저하게 입단속을 했다. 집값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말은 모두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고 아파트 투신자살 소식은 지역일간지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그 흔한 인터넷에서도 관계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집을 산사람은 그 집을 팔기 전까지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살아야 한다. 집값이 만족할 만큼 올라갈 때까지 살아야 한다. 사람이 떨어져 죽은 사건보다 집값이 떨어지는 일이 더 큰 비극인 세상. 죽음을 향해 자유낙하하는 인간보다 아파트 시세하락이 더 무서운 사회. 대한민국은 대체 어떤 사회인 걸까? 30년 넘는 시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가끔씩 나도 이 나라가 어떤 곳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뭐가 맞는 건지 어떤 식으로 납득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친구와 나는 말없이 술을 단 번에 들이켰다. 이야기를 한 친구도 듣고 있었던 나도 이상하게 목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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