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하인간

by 김태민

추락하는 인간을 보고 있는 심경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스미스>에는 끝에 도달하면 처음을 돌아봐야 한다는 내용의 대사가 나온다. 망가지고 변질된 인간의 추락을 보고 있으면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어디에 원인이 있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징후가 있었는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물고기와 인간의 공통점은 둘 다 머리부터 썩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변할 때는 반드시 사고방식부터 이상해진다. 신념이라고 운운하던 것들을 전면부정하고 본인의 잘못된 선택을 포장하는 행동이 나타난다. 양심이 기능을 정지하면 위선이 고개를 든다. 합리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자기 객관화 능력은 사라진다.


오래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말이 통하는 인간이라면 상황을 악화시키지도 않았다. 잘못된 방향을 항로로 설정한 배는 바람을 거스르고 나아간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나 소중한 이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전진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시련이나 역경 정도로 착각한다. 결국 본인의 삶은 착실하게 망가지고 대인관계 역시 성실하게 무너진다. 진짜 비극은 본인만 빼고 세상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의 문제점을 다 아는 것이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본인의 선택만 고수하기에 결국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린다. 이 과정에서 분노는 누적되고 증오 역시 내면에 쌓여서 단단한 퇴적층을 형성한다.


추락하는 인간은 내면의 증오를 드러내면서 세상을 상대한다. 투쟁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경쟁을 통해 우위를 선점하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투쟁대신 협력을 선택하는 이들이 승리하고 경쟁을 불식하고 협동을 이끌어내는 자들의 편이다. 적을 규정하고 오만으로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은 고립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면 화합을 모색하고 갈등을 줄이는데 노력한다. 인간관계나 업무 그리고 가족구성원 간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행동하고 무례하게 대하다 보면 관계도 상실하지만 동시에 평판도 사라진다. 가까이하기 싫은 이미지가 완성되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다. 한 번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들을 향한 원망과 증오만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원망과 분노로 질주하다 현실의 벽을 들이받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추락이 시작된다. 돌이킬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삶은 삽시간에 붕괴된다. 열정을 쏟아붓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데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깊은 반성 대신에 선택하는 것은 분노다. 열패감이라는 심지에 붙은 증오의 감정은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맹렬하게 타오른다. 마지막에는 세상을 항해 미움의 칼날을 들이밀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휘두른다. 추락하는 인간은 애초에 날개를 달아본 적도 없고 높이 올라가 본 적도 없다. 바닥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것이므로 추락이 아니라 침하라는 정확한 표현이다. 침하하는 인간은 결국 다 잃는다. 처음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삶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