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와 담쟁이

by 김태민

매일 빠짐없이 도서관을 찾는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서 책을 읽는다. 산을 접하고 있는 만안도서관은 풍경이 예쁘다. 가을이면 단풍잎이 비처럼 내리고 봄에는 산 주변으로 벚꽃이 핀다. 여름에는 싱그러운 녹음이 만들어내는 푸른빛에 둘러싸인다. 도서관 그 자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곳은 따로 있다. 도서관 입구 옆에 있는 야외쉼터다. 오래된 벤치가 오와 열을 맞춰서 놓여있고 그 위로 빨간 벽돌로 쌓은 지붕이 올라가 있다. 등나무와 덩굴이 가득 에워싼 쉼터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특히 바닥을 덮은 초록색 이끼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울창한 숲의 나무를 제일 좋아하고 그다음은 이끼를 좋아한다. 햇살이 강한 날이면 이끼는 연녹색 옷을 입고 비가 내리면 심록색으로 물든다. 물기가 마르기 시작하면 선명한 초록의 생기를 드러낸다. 이끼가 만들어내는 차분한 암녹색은 잿빛 콘크리트를 자연스럽게 덮는다. 넓게 펼쳐진 자연의 녹음을 보고 있을 때 몸과 마음은 평안을 얻는다. 이끼는 작은 숲이다. 울창한 숲을 손바닥 크기로 축소시킨 것 같다. 그래서 앉아서 이끼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블 코믹스의 앤트맨처럼 작아질 수 있다면 이끼의 숲을 거닐 수 있지 않을까?


이끼가 있는 곳에는 항상 담쟁이도 있다. 담쟁이덩굴은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올라가 살아있는 정원을 만든다. 낡은 건물이 많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거리를 걷다 보면 담쟁이덩굴을 자주 볼 수 있다. 빨간 벽돌로 지은 30년 넘은 다세대 주택이 가득한 골목. 화분이 가득 놓여있는 옥상 언저리에 담쟁이덩굴이 붙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동네는 푸른 이끼와 담쟁이가 만드는 녹색 빛으로 뒤덮일 것이다. 번듯한 최신식 아파트와 높이 솟은 주상복합도 멋지겠지만 나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주택단지가 더 좋다. 만안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도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풍경 때문이다.


이끼와 담쟁이는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 산업화의 그늘아래 버섯처럼 피어난 오래된 공장과 낡은 주거단지를 초록색 물결로 덮어버린다. 녹색으로 물드는 도시를 바라볼 때 마음이 편해진다. 선명한 색감과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한 고급 아파트 단지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찬란하다. 하지만 나는 옛날 사람이다. 흙냄새 나는 산과 나무가 좋다. 불편해도 오래된 동네의 편안한 풍경이 좋다. 도서관에서 내려다보는 낡은 동네는 주말의 고요함 속에 잠겨있다. 싱그러운 담쟁이덩굴이 만든 푸른 그늘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숲보다 천천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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