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자생활의 졸업템으로 선택했던 TVR 504를 잘 쓰고 있다. 흔한 아넬형 안경이지만 좋아하는 디테일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서 만족스럽게 착용하는 중이다. 부드러운 빛깔의 시트로 만든 패치워크 디자인은 클래식한 멋이 있어서 깔끔하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니는 나에게 꼭 맞는 좋은 안경이다. 만족감이 높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한정판이라 구하지 못했던 TVR의 다른 모델이 갖고 싶어졌다. 물소뿔 특유의 패턴이 매력적인 뿔테안경이었다. 구할 수 없어서 단념했었는데 오랜만에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나를 자극했다.
시계도 신발도 비싼 제품에 눈길도 주지 않는 나지만 안경만큼은 욕심을 낸다. 머리와 옷에 변화를 줘도 안경이 바뀌지 않으면 인상은 그대로다. 안경을 바꿔주는 것은 일종의 성형이자 변신이다. 20년 가까이 안경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바보 같은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원래 인간은 누구나 타협할 수 없는 고집을 하나쯤 갖고 산다. 구글에서 갖고 싶은 TVR의 제품고유번호를 입력했다. 핸드폰 화면 속에서 영롱한 빛깔의 안경이 나를 맞이했다. 내 거라는 이름표가 딱 붙어있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장터에서 매물을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딱 하나 있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아주 좋은 상태였다. 200개 한정판이라 발매 당시 가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중고매물은 3분의 1 가격이었다. 사서 포장만 뜯어본 제품이라 망설임 없이 구매의사를 전달했고 직거래로 바로 손에 넣었다. 깔끔한 포마드 헤어의 판매자는 그동안 수집한 안경컬렉션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더는 쓸 일이 없어서 이 가격에 팔아도 미련이 없다면서 쇼핑백을 내밀었다. 안경상태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좋았다.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거울 앞에서 착용해 본 안경은 역시나 생각한 것만큼 잘 어울렸다. 패션은 자기만족이라는 말이 있다. 그중에서도 안경이 제일인 것 같다. 사람들이 어울린다고 말해도 내 맘에 안 들면 방치하게 된다. 반대로 내 눈에 예쁘기만 하면 주변에서 말려도 기어코 쓰고 다닌다. 제 눈의 안경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내 맘에 드는 안경이 최고다. 같은 안경애호가인 지인에게 TVR 영입 소식을 전달했다. 마지막 졸업템을 샀다는 내 말에 지인은 안경질에 끝은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납득해 버렸다. 그래도 가능하면 이제는 정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