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by 김태민

그동안 미뤄졌던 동네 재개발 공사가 시작됐다. 주민들이 퇴거하고 남은 빈집만 가득했던 산동네. 곳곳에 가림막이 설치되고 밤낮으로 중장비가 좁은 골목을 오르내렸다. 아직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기 전이라 오래된 동네는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사는 곳은 보존 반대편 산동네는 재개발로 운명이 엇갈렸다. 사람들은 땅값이나 새로 들어오는 아파트를 입에 자주 올렸지만 나는 관심 없다. 그저 익숙했던 상록마을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도시재생사업이나 재개발이나 결국 본질은 하나다. 원래 모습을 전부 밀어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한국의 주거문화는 2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수명을 갖고 있다. 이 나라에서 오래된 것은 낙후되었다는 낙인이 붙고 새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짧은 산업화 기간 동안 전통문화가 빠르게 소실된 이유도 알 것 같다. 건설경제 자체가 대규모 공동주택단지를 짓고 허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큰돈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므로 재생사업이나 재개발이나 결국 본질은 돈이다. 집값이나 땅값만 사람들이 운운하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2차선 도로를 경계선 삼아 몇 달째 기묘한 동거가 계속되는 중이다. 절반은 사람들이 살고 절반은 사람 하나 없는 텅 빈집들만 놓여있다.


산등성이 위의 연립주택들은 창문과 문짝이 다 뜯어진 채로 낡아가는 중이다. 도로 옆으로 늘어선 가게들 역시 텅 비었다. 작년 가을부터 하나 둘 동네를 뜨기 시작하더니 이제 유령도시처럼 빈점포만 가득하다. 그리고 하나같이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사람이 떠난 곳에 새로 자리를 트는 것은 잡초뿐이다. 보도블록 사이마다 틈을 비집고 들어온 여러 종류의 잡초가 붙어있었다. 생명력 강한 자연의 침투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연 위에 도로를 깔고 도시를 만들었다. 문명의 침범이 먼저였다.


흙을 덮고 나무를 잘라낸 자리 위에 세운 마을. 마을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자연이 다시 외연을 확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허리 높이까지 자란 잡초들이 수풀을 이루고 있었다. 문명이 붕괴한다면 수많은 도시와 건축물은 천천히 푸른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이 사람이 사라진 도시를 덮은 이미지를 상상했다. 생각해 보면 천년 가는 나라도 부자도 없다. 인간이 떠나면 인간이 만들고 세운 것들은 모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뿐이다. 애초에 자연에 소유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룰 속에서 서로 평생 빼앗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 잡초에게 장악당한 마을을 보면서 무상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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