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오직 표지의 간략한 설명만 보고 책을 고른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스포일러를 당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마안갑의 살인>을 골랐다. 제목과 표지가 미스터리물 특유의 분위기를 뿜어내는 느낌이 맘에 들었다. 데뷔작으로 일본 주요 미스터리 상을 석권한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그리고 그 기대는 완벽하게 충족됐다. 밤새 잠도 안 자고 푹 빠져서 읽었다. 올해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머리를 맞은 듯한 반전과 치밀한 복선 그리고 세부설정까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기세를 몰아 단숨에 데뷔작까지 읽었다. 신선한 소재와 강렬한 반전을 담은 작품이라 재미있었지만 전작보다 후속작이 더 마음에 들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날려버린 이마무라에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정말 완성도 높은 추리소설은 거미집을 연상하게 만든다. 치밀한 설정들이 촘촘하게 엮인 내용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만든 함정에 걸려 꼼짝없이 속아 넘어가게 된다. 추리로 진상을 밝히지도 못한 채 실패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 잡아먹히는 통렬한 패배감은 쓰라리지만 멋진 작품을 만났다는 역설적인 쾌감을 동반한다. 이 양가감정이 추리소설의 매력이다.
범인을 맞추고 진상을 밝혀내는 짜릿함도 좋지만 작가가 만든 트릭에 넘어가서 된통 당해도 즐겁다. 기상천외한 반전과 획기적인 트릭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읽으면서 놓친 복선과 무심코 지나간 흔적을 책장을 넘어가며 찾는 것도 재미다. 본질을 꿰뚫고 작가와의 승부에서 이겼을 때의 성취감은 상상이상이다. 승률이 낮은 편이라 기쁨이 더 크다. 추리소설은 눈으로 맞추는 루빅스큐브다.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정답을 찾는다. 범인은 맞추지 못했더라도 의도나 원인을 알아내기도 한다. 흘러간 대사나 의미 없이 지나간 장면들을 읽다 머릿속이 번뜩일 때가 있다. 널려있던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질 때의 짜릿함은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지적유희라는 측면에서 추리는 작가가 설치한 덫을 피해 진상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장애물경주다. 함정에 걸려 넘어지거나 반전이라는 덫에 걸리기도 하지만 꾸준히 달리다 보면 경험이 생긴다. 실패와 성공을 가릴 필요 없이 경험만큼 좋은 경력은 없다. 책을 많이 보다 보면 범인을 단 번에 맞출 때도 있고 의도한 현상 속의 감춰진 진상을 파악할 때도 있다. 주인공인 탐정의 입장이 아니라 범인이나 작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도 생긴다. 사물과 현상을 다각적으로 보는 방법을 길러준다는 면에서 추리소설 만한 장르는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 짜릿한 지적유희를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