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양사람

상록마을

by 김태민

빨래를 걷으려고 옥상에 올라갔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건너편 상록마을이 철거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런 타일이 붙어있는 3층 짜리 낡은 상가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거대한 포클레인이 내는 엔진음과 건물들이 무너지는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한여름 매미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추억 속에 남은 동네가 눈앞에서 사라져 간다. 동네 꼭대기에 있던 연립주택들은 이미 돌무더기 속에 묻혀버렸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골목은 흙먼지 아래 건축폐기물더미에 덮여 더는 보이지 않았다. 철거는 신속하고 빠르게 이뤄졌다. 몇 분 새 건물 여러 채가 완전히 사라졌다.


상록마을은 이름처럼 늘 푸른 동네였다. 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자리 잡은 마을. 산동네 전체가 초록빛 병풍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봄이면 꽃으로 물들고 여름으로 넘어갈 때쯤 꽃가루가 눈처럼 내렸다. 빨갛게 물든 가을산의 모습 역시 아름다웠다. 파란 숲 속에 곧게 서있던 자작나무들이 생각난다. 상록마을 뒷산에는 자작나무가 정말 많았다. 하얀 수피를 드러낸 자작나무는 사계절 내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 같았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동네. 저녁이면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가득했던 동네. 열린 창문 틈 사이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흘러넘치던 동네. 상록마을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았다.


만드는 것보다 부수는 것이 훨씬 쉽다. 수십 년 동안 산비탈을 지키고 서있던 정겨운 산동네는 반나절만에 사라졌다. 공들여 만들고 다시 공들여가며 허물고 그 위에 또다시 공들여서 아파트단지를 세운다. 공사는 끝이 없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공사는 계속된다. 안양에서 30년 넘게 사는 동안 철거와 시공이 멈춘 적은 없었다. 어딘가는 사라지고 또 어딘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없어진 동네와 사라진 마을을 손으로 꼽아보니 금세 주먹만 남았다.


학창 시절 가끔씩 가슴이 답답할 때면 상록마을 꼭대기의 놀이터까지 걸어 올라갔다. 한대뿐인 시소에 앉아서 하늘의 별을 실컷 올려다봤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 더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 머릿속의 기억만 남아 혼자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사람보다 마을의 수명이 짧다. 도시는 우리보다 더 빨리 늙는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질까.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질까. 결국 오래된 것들은 다 사라지고 그 자리는 빽빽한 아파트숲만 남을 것 같다. 대학생 때 사진과제로 출품했던 상록마을 풍경을 웹하드에서 찾았다. 기억보다 기록이 길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모든 것들이 기억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제라도 기록해야겠다. 동네도 사람도 풍경도 글로 사진으로 남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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