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양사람

노래교실 아래 작업실

by 김태민

글쓰기는 생각 외로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운동을 빼먹지 않는 이유도 오래 앉아서 글을 짓기 위해서다. 체력은 괜찮아도 계속해서 문장을 만들다 보면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있다. 문맥을 다듬고 꼭 맞는 표현을 떠올리는데 애를 먹다 보면 맥이 빠진다. 그럴 때면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바깥 풍경을 보기도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별 소용이 없을 때는 미련 없이 짐을 챙겨서 일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공간으로 이동한다. 장소를 옮기면 기분도 마음도 새로워진다. 사람은 동물이다. 뇌는 생각이상으로 단순해서 시각정보와 환경의 변화를 잘 받아들인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시립도서관으로 올라간다. 오전시간은 도서관에서 글을 쓰며 보낸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도서관은 최고의 창작공간이다. 글을 쓰다 집중력이 흩어질 때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에세이 한 두 편쯤 완성하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밥을 먹고 나면 두 번째 작업실로 발길을 옮긴다. 공원 옆 주민센터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커다란 전면창이 달린 탁 트인 공간은 시립도서관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머리 위에 노란 조명이 달린 원목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여름 내내 이곳에서 수십 편의 에세이를 써냈다. 집 가까운 곳의 주민센터 도서관은 내 창작의 인큐베이터다. 오전에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글을 마무리 짓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실은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개방된 곳이라 문이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노래교실이다. 글을 쓰고 있을 때면 노랫소리가 들린다. 방음시설을 갖췄지만 새어 나오는 멜로디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어르신들이 차례대로 부르는 노랫소리는 정겹다. 흘러나오는 가요와 트로트 리듬에 손가락을 까딱일 때도 있다.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서 친숙한 감정을 느꼈다. 세월이 묻어나는 노랫말과 지난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잇는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훌륭한 기교나 세련된 창법은 아니었지만 진솔하게 들렸다. 박자가 조금 안 맞아도 발음이 다소 부정확해도 괜찮다. 진정한 예술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즐겁게 부르는 어르신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립도서관의 풍경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 돋보기를 보면서 집중해서 책을 읽는 어르신들, 수험공부 하는 학생과 퇴근 하고 찾아온 직장인까지. 길을 가다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동네 사람들로 가득하다. 익숙한 풍경 속의 친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글을 쓴다. 어르신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주민센터에서 글을 쓰는 오후 역시 편안하다. 이야기소리와 웃음소리 정겨운 이웃들이 만들어내는 백색소음에서 따뜻한 감촉을 느낀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동네는 나의 커다란 작업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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