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곧 채울 것이다

실패와 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

by 김태민

실패와 좌절에 대한 수많은 극복담은 막상 우리가 시련에 직면했을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아픔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것이다. 타인의 경험에서 읽어낼 수 있는 희망의 이미지는 밝고 아름답지만 현실로 끌어와 디딤돌로 삼으려하면 희미하게 부서져버린다.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그들과 나는 출발선과 상황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암흑기를 극복해낸 인물들의 성공담은 시련의 정도가 클수록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가장한 고문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이겨낸 절망이 깊을수록 슬픔이 짙을수록 거기에 비하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힘겨워 하는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끌어온 위로의 말과 타인의 성공신화는 그것이 화려하고 극적일수록 빨리 사라진다. 그 후에 직면하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며 우리는 더 깊은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패배자라는 낙인과 실패자라는 꼬리표는 쉽사리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집요하게 따라붙어 절망적인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든다. 그래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희망의 이미지를 탐색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남은 것을 확인하는 시도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상실감을 용기로 치환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한다.

이 과정은 상상이상으로 고통스럽다. 절망적인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데 쓸 만한 디딤돌은 하나도 없다. 지난날의 나를 지탱해주던 것들은 산산이 부서져 조각나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은 어디 내밀지도 못할 보잘 것 없는 부끄러움들이다. 고통을 재확인 하게 되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몇 번이나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현실이 어떤지를 똑똑히 목격하면서 객관적인 실패의 위치 확인하며 탄식하는 것이다.

이전에 가진 것들을 다 상실했다는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얻는 결론은 내가 가진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남은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 역설적으로 이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면서 상실감과 패배감을 끌어안고 있을 때 우리는 결코 내면을 비울 수 없다. 더는 쓸모없는 과거의 그림자를 쥐고 있느라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일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는 바닥이 아니다.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는 아직 더 많이 잃어버려야할 때다.

안 좋은 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시련은 중첩되어 파도처럼 몸집을 불려 나를 덮친다. 정신없이 시련에 얻어맞으면서 끝까지 미련을 쥐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다 놓아버려야 한다. 비워내지 않으면 실패의 이미지로 얼룩진 과거로 인해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잃어버린 것들에 과감하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자신이 가진 초라한 것들을 보듬어 안고 바닥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결단이라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시련을 이겨내는 용기는 시련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절망을 온몸으로 수용하면서 고통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것은 ‘난 이제 정말 아무것도 없다.’ 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큰 용기다. 발버둥 치면서 현실과 맞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망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담겠다는 비움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전자가 실패에 대한 발악이라면 후자는 실패를 기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이다. 모든 것을 비워냈을 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다. 물론 이전의 화려했던 시절이 다시 재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잃어버린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러나 비움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영점에서 다시 새로이 시작하는 일이다. 이전에 소유하고 누렸던 것들을 복구할 수는 없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일을 설계하고 구현해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기회를 얻은 친구를 옆에서 보고 있다. 친구는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직장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당했고 오랫동안 의지했던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게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수술까지 받았다. 직업과 사람 그리고 건강을 잃었다. 바닥 아래의 바닥까지 내려간 친구는 절망이라 불러야할 상황을 딛고 일어났다. 가진 것을 다 잃고 나자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깨달았다는 친구의 말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있던 친구는 내게 ‘부활’ 이라는 짧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 비우고 나니 이제 새롭게 채울 일만 남았다며 이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기 시작한 친구의 모습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비움은 언제나 채움으로 이어진다. 잃어버려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삶의 가치가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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