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달라도 괜찮아

(괜찮아 3부작)다름은 존중 받아야 한다

by 김태민

엄마의 잔소리는 듣기 싫어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듯하게 차려입어라, 늦어도 이는 꼭 닦고 자라 같은 말속에는 언제나 걱정 어린 진심이 숨어있다. 마음이 깃든 잔소리는 듣기는 싫어도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 그러나 반대로 배려와 존중이 없는 잔소리. 나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전혀 없는 훈수는 듣기도 싫지만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런 유형의 훈수는 대부분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 라는 이분법적인 전제를 포함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의미 있는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너 내 말대로 안하면 큰일 난다. 그렇게 하면 다 망쳐.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네가 아직 뭘 모르는 구나.” 라는 말로 시작되는 장황한 잔소리는 자신의 주관만을 내세우며 정답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언어의 폭력이다.

사실 정답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크게 성공한 누군가가 성공의 비법을 역설하며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외쳐도 그건 그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삶의 진리일 순 없다. 일방적인 훈수를 두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의 생활방식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해야만 성공하는 거야.’ 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을 사회적인 상식으로 일반화하며 삶의 다양성을 선택하는 모험을 비난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은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말. 돈 안 되는 일을 하지 말고 시험이라도 준비하라는 말. 그리고 늘 그 끝에는 안정적인 삶을 위한 소득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정년과 사회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좋은 직장이 주는 메리트를 늘어놓는다. 이분법적이고 일방적인 훈수에는 언제나 정답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정답 이외의 선택을 한 이들의 삶은 기준을 벗어난 패배나 다름없다. 기준에 부합하는 소수의 사람이 승자가 되고 그 소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인생의 패배자로 전락하는 훈수는 폭력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만약에 인간이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정답이라고 부를 만한 지침이 존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누적된 인생의 선택을 통해 합리적으로 검증된 인생 모델을 뽑아낼 수 도 있고, 여러 번 삶을 살면서 행복을 이룩하는 검증된 공식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 어느 누구도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체험해볼 수 없고 아무리 많은 경험을 했다 한들 처음 보는 누군가의 삶에 평가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외모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은 이해하면서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단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함께 의지하고 연대하며 이를 보완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존중과 배려를 통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할 때 인간운 서로를 신뢰함으로써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분법적인 논리로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이런 연대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의 독립적인 가치는 무시 받고 다양한 삶의 모습은 존중받지 못한다. 기준에 부합하는 정답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만이 승자가 되고 그 외의 절대다수는 패자가 되는 문화 속에 행복은 소득과 지위 그리고 거주 지역의 땅값으로 측정될 것이다. 독선적인 훈수야 말로 잔소리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정답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더 열심히 부딪히고 깨지고 일어나면서 선택의 정당함을 증명해내야 한다. 보란 듯이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세상이 선택 받은 관상용 묘목들로 가득한 온실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는 숲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커다란 숲속엔 한 가지 종류의 나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수 천 년을 살아온 고목 옆에 이제 막 떡잎을 뗀 싹이 자라난다. 겨울을 사는 침엽수와 여름의 하늘을 뒤덮는 활엽수는 한 데 모여 함께 살아간다. 약초와 잡초는 영역을 구분 짓지 않고 어울려 지내고 숲의 모든 식물들은 햇살과 비를 함께 나눠 먹으며 자란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드넓은 숲의 더불어 사는 식물들처럼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 않고 행복한 모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