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3부작) 나만의 속도를 갖자
나는 런닝을 좋아한다. 날씨가 선선한 봄이나 가을이면 집 앞 개천가의 트랙을 따라 달리고 추운 겨울에는 헬스장의 런닝머신 위를 달린다. 뛰기 전 충분히 몸을 풀고 런닝화를 발에 꼭 맞게 고쳐 신고 나면 뛸 준비가 끝난다. 그 다음에는 천천히 500m 정도의 거리를 걷는다. 처음부터 힘차게 달리면 얼마가지 않아 멈춰서 헉헉대며 숨을 고르는 일이 생긴다. 충분히 걸으면서 다리를 풀어줘야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걸었다 싶으면 이제 속도를 올린다. 보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발끝에 속도가 붙는다. 숨을 일정하게 들이 마시고 내쉬면서 호흡과 맥박을 적절히 유지한다. 오래달리려면 적어도 1.5km는 이렇게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
런닝을 하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오래 달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하체의 근력이나 뛰어난 체력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튼튼한 하체와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처음부터 빠르게 질주하면 얼마 가지 않아 지치게 된다. 한 번 지치게 되면 앉아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만 다시 달릴 수 있다. 시작부터 무리해서 달리면 뛰는 시간보다 앉아서 쉬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런닝을 할 때는 천천히 속도를 올리면서 숨이 모자라지 않게 조절해주고 심장의 박동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완급조절을 해야 한다. 이러한 완급조절을 해야만 달려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힘을 비축할 수 있다. 무작정 신나게 달리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상쾌함을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하지만 시작점으로 되돌아갈 힘은 사라진다. 질주의 쾌감은 순간이고 돌아가야 할 길은 멀다.
속도와 경쟁에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지만 사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완급조절과 닮은 꾸준함은 언제나 느리다. 상황을 면밀하게 체크하고 변화하는 요소들을 확인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앞서 나가는 사람들에게 뒤처지기 쉽고 앞지르기를 할 수 없기에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꾸준함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뛰어야만 달려온 거리를 되돌아갈 수 있듯이 건실하게 적립된 꾸준함의 가치는 언젠가 닥쳐올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폭발적인 속도를 내면서 혜성처럼 빠르게 앞질러가는 사람들은 ‘인생은 한방이다.’라는 말을 뱉으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패배감과 박탈감을 안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자극받은 사람들은 성실함 대신 기회주의를 꾸준함 대신 눈치와 처세를 몸에 익힌다. 속고 속이는 것이 노력보다 가치 있고 남들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세상에서 꾸준함을 몸에 익힌 사람들은 비웃음을 사기 쉽다. 그러나 삶은 길다. 눈부신 성공이 5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남을 밟고 올라선 사람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밟혀 바닥으로 떨어진다. 매섭게 질주하는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넘어진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면 정말 오랜 시간을 쉬어야만 한다.
꾸준함은 실패가 없다. 꾸준히 달려온 사람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속도를 조절하며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다한다. 설령 넘어지더라도 몸으로 체득한 건실함이 남들보다 빠르게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단거리 질주로 벌어진 거리는 꾸준히 걸어온 사람들에 의해 결국엔 좁혀 지는 것이다. 폭발적인 질주는 뒤가 없다. 그러나 꾸준한 달리기는 반환점을 찍고 다시 뛰어온 거리만큼 되돌아가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 반환점은 정말 멀리 있지만 이를 기점으로 꾸준하게 살아온 삶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하고 변화한다. 이것이 바로 터닝포인트다. 삶의 터닝포인트는 결국 꾸준히 완급조절을 하며 성실하게 달려온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기회다. 남들이 도달하지 못한 곳에 삶을 역전시킬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아주 멀리 있기에 꾸준히 달려온 자에게만 허락된다. 우리 삶에서 질주보다 런닝이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앞서가는 사람들보다 더 멀리 가려면 앞만 보고 자신이 가야할 길만을 건실하게 달리면 된다. 그러다보면 나를 추월하며 달려간 사람들은 다다르지 못한 결승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