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스타일에도 온고이지신이 필요하다

by 김태민

나는 사람마다 어울리는 스타일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패션은 자신감 있는 태도와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자긍심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정말 잘 어울리는 마치 한 몸 같은 스타일과 적당히 무난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의 차이는 뚜렷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미지와 조화로운 스타일을 찾는 것이 옷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는 이른바 관리의 핵심이다.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에게 꼭 맞는 스타일을 찾았다 해도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신선한 스타일에 때때로 시선을 빼앗기는 일이 있다. 그러다보면 그 스타일이 나랑 어울리지 않을 것임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시도해보고 싶은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난 1월 SPA 브랜드들의 대대적인 세일을 맞아 스냅백을 사기로 마음먹고 쇼핑에 나섰다.

얼굴이 긴데다 각이 져있고 무엇보다 뒤통수가 평평한 탓에 어떤 모자를 써도 어울리지 않는 내게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스냅백은 ‘오 이 모자는 나도 어울리겠는데.’ 라는 로망 아닌 로망을 갖게 만들었다. 밝은 색부터 어두운색 다양한 소재와 패턴을 사용한 예쁜 스냅백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도 몇 개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어떤 스냅백을 써도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진회색의 스냅백이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건 입고 있던 코트가 비슷한 계열의 컬러였기 때문이었다. 스냅백을 쓴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나는 어색한 부조화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입는 스타일 그래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은 굳이 모자가 필요 없는 스타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스냅백을 얹어봐야 별 의미가 없는 스타일이 내 스타일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스타일을 풀어 쓰자면 이렇다. 화려한 악세사리를 싫어하는 나는 다양한 소재의 타이와 버튼홀에 다는 뱃지 그리고 부토니에로 포인트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겨울철엔 어두운 색의 니트나 코트를 주로 입고 신발은 깔끔한 클리퍼를 요일 별로 바꿔 신는다. 잘 입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부족하게 입었다는 인상 역시 들지 않는 스타일이고, 하나를 빼면 겉보기에 좀 아쉬워지지만 하나를 더하면 적당함이라는 균형이 깨지는 스타일인 것이다. 스냅백을 써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던 내 호기심은 거기서 끝이 났다. 굳이 지금의 안정적인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유행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만의 또렷한 취향이다. 취향이란 모두가 예쁘다고 말하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들을 선택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나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내 취향을 따라 살아왔고 그것이 내게 더 어울린다는 것을 스냅백을 쓴 어색한 내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미련 없이 예쁜 스냅백들을 제자리에 놓으면서도 아쉽지 않았다. ‘남들도 하는 데 나도 한번 해봐야지. 어울릴 거야.’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시도한 새로운 스타일이 본인과 어울리고 스스로도 만족스럽다면 기쁜 일이다. 그러나 기존에 갖고 있던 안정감 있는 자신의 모습과 새로운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용기 있는 시도를 한 것으로 만족하자. 그만큼 자기가 가진 정체성이 뚜렷하고 분명하단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나는 스냅백은 안어울리지만 뚜렷한 나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지금의 내 모습에 불만은 없다. 때때로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덜어내고 싶진 않다.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과 개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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