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길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주말의 연희동은 평소보다 조금 한산했다. 기온은 많이 올랐지만 바람은 차고 날이 흐린 탓인지 사람들로 붐비던 여느 때 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디자이너인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내려 거리 곳곳에 새하얀 경계선들이 만들어졌다. 환하게 밝아진 길을 걸으면서 나는 시시한 농담을 몇 개 건넸고 우리는 웃으며 연희동 골목을 걸었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예쁘다고 생각했던 카페에 들어가서 오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카페는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곳이었고 대문 안쪽에 위치한 작은 마당에는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온기가 우리 둘을 맞아 주었다. 실내의 공기는 정말 따뜻해서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몸이 금세 녹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카운터 옆으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양이가 두 마리. 한 녀석은 부드러운 털이 수북한 꼬리를 늘어뜨리고서 의자 하나를 차지한 채 졸고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졸린 눈으로 보다 말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 순한 고양이들. 길고 고운 털을 쓰다듬고 있자니 카페에 짙게 벤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해가 지면 추워지는 창가 자리를 피해 따뜻한 난로 근처에 앉았다. 함께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다 나는 ‘기생충 커피’ 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했다. 머그컵을 들고 있는 벌레 그림이 정말 귀여워서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기생충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조그만 글씨로 메뉴판에 적힌 글을 통해 기생충 커피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판매수익금은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질병관리사업에 기부되며, 나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심으로써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 받는 제 3세계 사람들을 돕게 된다. 기부되는 금액은 커피가격의 10%로 한 잔에 500원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금액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신선한 경험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단지 동생과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왔고 평소 자주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의 행동에 선행은 전혀 의도된 것이 아니었지만 내가 지불한 5000원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위해 쓰여 진다. 의도와 목표를 분명하게 가진 선행은 위대하다. 자신의 이익을 배제하고 낯선 곳에서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숭고하고 값진 것이다. 그러나 의도되지 않았지만 뜻하지 않은 행위로 인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 역시 의미 있는 행동이다. 제3세계의 사람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이런 뜻하지 않은 선행의 결과물을 받고 누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을 구제하고 돕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산을 깎고 숲을 베어내 상품을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지만 어려운 이를 돕고 상처 입은 사람을 살리는 일도 사람이 한다. 누군가는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헌신과 봉사로 사람을 살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실천한 선행으로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누군가를 돕는다. 선행에는 이름표가 없다. 그래서 이름표 없는 착한 행동은 돌고 돌아 선의 순환 고리를 만든다. 알고 보면 우리들은 모두 누군가의 삶에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 선행을 했을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크든 작든 우리는 누군가를 돕는 선행을 실천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행의 크기와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행동을 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선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 것 또한 꼭 필요하다. 기생충커피를 마시고 난 후에 나는 저개발 국가의 아동과 국내의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NGO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후배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연락을 주기로 했다.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위한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