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지울 수 없고 말은 무를 수 없다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것은 사소한 말이다. 별의미 없는 한 마디가 파국을 부른다. 작정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 대화를 하다 비롯된 갈등으로 인해 주고받는 비수 같은 말은 어느 정도 대비를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쏟아낼 것을 알기 때문이다. 회색빛 구름처럼 몰려온 분노의 감정은 날 선 비난을 장대비처럼 퍼붓는다. 그럴 때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논리로 스스로를 방어한다. 알량하지만 두꺼운 자존심의 우비는 거친 말을 의외로 잘 견딘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지는 가랑비는 막을 수가 없다. 준비할 틈도 없이 파고들어 온 사소한 한 마디는 영혼에 치명상을 남긴다.
흔한 말다툼이 칼부림으로 이어졌다는 끔찍한 사건들을 뉴스에서 자주 접한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감정은 또렷하게 남는다. 생각 없이 던진 별것 아닌 한 마디는 시간을 건너 증오의 감정을 일깨운다. 오랜 잠을 자다 깨어난 분노는 눈을 채 뜨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든다. 이성이 손을 쓰기도 전에 평생의 후회를 남길 만한 비극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제일 예리한 칼이다. 그것도 아주 잘 드는 날카로운 양날의 검이다. 혀에서 튀어나온 말은 입 밖으로 나가서 다시 돌아와 내 목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남들은 몰라도 본인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불확정성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라는 사실을 이제 누구나 안다. 양자역학이나 이론물리학 같은 어려운 단어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영원한 것도 완벽한 것도 없으므로 확실하고 안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은 안심할 때 발생하고 사고는 방심할 때 일어난다. 잘못된 말에서 비롯되는 비극이 내 인생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은 오만에 불과하다. 누구나 말실수를 하게 된다. 말이 많을수록 실언이 늘고 허물없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을 넘기 쉽다. 보이지 않는 정서적 한계선을 침범한 한 마디의 말은 인내의 임계점을 망가뜨려버린다.
오래된 감정을 갑자기 건드리면 인내심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부모와 자식이라도 소중한 친구 사이라도 소용없다. 칼에 찔렸을 때 비명을 지르지 않는 인간은 없다. 세 치 혀가 뱉은 날 선 비수는 그대로 심장을 겨냥하고 들어온다.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당혹감이 차례로 폐부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오면 이성은 유지될 수 없다. 고통스러운 절규를 토해내며 가슴은 감정을 상실하고 철저하게 무너진다.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애정의 울타리는 엉망으로 망가진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된 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 별말 아니라고 생각한 표현이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 한마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반성도 사과도 없이 듣는 사람을 타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거나 웃고 가볍게 넘기라는 태도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과와 인정 그리고 반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친근함을 빌미로 별일 아니라는 듯 넘어가려는 행동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는 것 만이 그나마 최악을 피하는 대안이다. 빠르게 말실수를 인정하고 곧바로 정정하면 상황을 바로 잡을 수도 있다. 문제는 수습한다고 해도 상대에게 말로 인한 상처는 남는다는 점이다. 사람을 상처 입히는 말은 단 한마디면 충분하지만 상처를 낫게 하려면 백 마디 말을 해도 부족하다.
결국 말실수가 일으키는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말을 뱉는 것은 금물이다. 세 번 고민하고 말하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친한 사이니까 괜찮을 거라는 착각은 생각보다 쉽게 선을 넘어버린다. 그리고 친밀한 사이라서 역설적으로 말로 인한 상처가 더 깊게 남는다. 소중한 사람이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날린 한 마디는 감정의 되새김질로 이어진다.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여러 번 생각하면서 마음은 슬픔과 실망감에 휩싸인다.
말을 조심해서 하라는 격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역사의 비극으로 남은 전쟁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분쟁도 모두 말로 인해 발생했다. 존중이 결여된 대화는 이해가 아니라 오해를 낳는다. 갑자기 시작된 말다툼은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고 가슴을 찌르는 한마디는 큰 상처를 남긴다. 혀로 휘두르는 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 어떤 칼보다 날카롭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남는다. 말이 남긴 흉터는 결코 말로 치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항상 말을 조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 해결하는 것보다 언제나 예방이 최고다.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다.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면서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표현력은 어디까지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달변가일수록 구설수가 따라붙고 말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말실수로 큰 낭패를 본다. 말을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말을 조심하려고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리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풍부한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말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 안다. 그러므로 신경 써서 단어를 선택하고 상황에 맞게 문장을 다듬을 수 있다.
반대로 이기적인 사람은 대게 정서적인 공감능력이 결여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마구 뱉는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말이 화를 부르는 사건사고에 직면한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저지르고 나면 수습할 수도 없고 시간을 돌릴 수도 없다. 자기중심적인 화법으로 화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공감능력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공감하는 것이 어렵다면 말을 아끼고 참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말을 참을 줄 아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고 대화로 감정을 확인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읽고 쓰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들 말을 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뛰어난 달변가도 말실수는 쉽게 덮을 수 없다. 글은 지울 수 없고 말은 취소할 수 없다. 언어는 혀 끝을 떠나는 순간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된다.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어디에 꽂힐지 알 수 없다. 소중한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은 비극이나 마찬가지다. 신경 쓰고 주의해서 말하는 습관이 소중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