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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19. 2023

친구와 술 그리고 숙취

술자리가 만든 기억과 추억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저녁에 이마트에서 다 같이 장을 봤다. 타임세일 덕분에 3,40% 할인된 가격에 맛있는 안주를 잔뜩 샀다. 건장한 성인남자 셋이라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카트에 이것저것 담았다. 술도 마찬가지로 넉넉하게 샀다. 차에 싣고 친구집에 올라가자마자 유부초밥과 마라볶음면을 먹었다. 가볍게 하이볼을 만들어서 기분 좋게 첫 잔을 주고받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과음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섞어 마시는 일도 없고 서로 술을 강권하지도 않는다. 숙취로 몇 번 크게 고생하고 나서 우리끼리 정한 암묵적인 룰이다. 나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친한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를 제외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내가 참석하는 술자리는 1년에 많아봐야 20번 정도인 것 같다.


 술에 대한 나의 원칙은 간단하다. 좋을 때만 마시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친구들과 나는 과음해서 정말 크게 고생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객기를 부리면서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도 아니고 폭탄주를 돌렸던 적도 없다. 다 같이 모였던 즐거웠던 술자리에서 주량을 초과해서 마셨다가 모두 생지옥을 맛봤다. 친구 동네의 부안집이라는 고깃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라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우리는 남자 셋이서 소주 20병을 마셨다. 왜 이렇게 술이 많이 들어갔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평소 주량을 몇 배로 초과했던 날이다. 나는 한 병반 이상 마실 일이 거의 없다. 오랜만에 만나서 기분이 좋았던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집에 가는 길에는 힘든 줄 몰랐다. 심지어 내가 가고 친구 둘은 캔맥주까지 나눠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새벽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잠에서 깼다.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천장이 빙빙 돌았다. 침대 위에 있는 내 몸이 거대한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겟아웃에 보면 최면에 걸린 주인공이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생각났다. 몸은 침대 위에 있는데 아래로 계속 떨어지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속은 괜찮았는데 두통이 너무 심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했다. 날숨을 내뱉는 순간 알코올 향이 확 올라왔다. 친구들보다 조금 덜 마셨지만 주량을 초과해서 속이 엉망이었다. 위장에 소주가 5병은 가까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자 현기증이 났다. 의자에 앉아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한참 걸렸다. 상태가 진정되고 난 후에 겨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나는 6시가 되면 무조건 일어난다. 심한 숙취로 인한 두통 때문에 눈알까지 아팠다. 아침을 먹고 거의 오전 10시쯤 겨우 정신을 차렸다. 흐리멍덩한 머리로 글을 쓰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때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정오 무렵에 온 카톡은 간단했다. 다시는 무리해서 마시지 말자는 간단한 내용이었고 모두 동의했다. 20대 초반에는 객기를 부리다 한 번씩 돌아가며 고생을 했다. 그때는 누구나 그럴 만한 나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잖게 술을 마시는 쪽을 선호했다. 그래서 전날의 폭음은 생각지도 못한 일종의 사고였다. 그 후로 우리는 무리해서 술을 마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빨리 마시다 취하지 않도록 서로 페이스조절을 하면서 챙겨줬다.


 생지옥을 맛본 친구들과 나는 숙취를 미연에 방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물색했다. 기존에는 초코우유를 즐겨 먹었다. 실제로 초코우유는 음주 후 두통을 예방하고 빠르게 숙취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초코우유는 우리의 공식적인 숙취해소 음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이 필요했다.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가 RU21이라는 비타민제를 추천했다. 술 마시기 전에 두 알 정도 섭취하면 제법 효과가 좋았다. 그래도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술자리에 위청수골드를 들고 왔다. 위청수는 소화제였지만 골드는 효능항목에 떡하니 과음이 붙어있었다. 술 마실 때 한 번 다음날 일어나서 한 번 마셨는데 효과가 정말 탁월했다. 비로소 완벽한 숙취해소 라인업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우리는 술자리가 끝나고 숙취로 고생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러나 세상 일은 늘 예외가 있다. 예상을 벗어나는 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친구 집이 모여서 즐겁게 하이볼을 나눠 마시다 맥주로 갈아탔다. 주종을 바꿀 때는 충분한 간격을 두는 것이 우리 사이의 약속이었다. 잠깐 나가서 밤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다 같이 유튜브를 보면서 맥주를 땄다. 나는 맥주 대신에 남은 하이볼을 비우기로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잔을 부딪혔다. 자정을 넘겨서 잠이 들었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파트 주변을 느긋하게 산책하고 돌아와서 뒤늦게 일어난 친구랑 아침을 먹었다. 친구는 두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는 숙취 때문에 정오가 될 때까지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었다.


 다 같이 마셨는데 나 혼자만 멀쩡했던 이유가 있었다. 원인은 바로 맥주였다. 하이볼을 마시고  둘이 나눠 마신 맥주가 최악의 시너지를 일으켰던 것이다.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던 친구는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다 죽어가는 몰골로 끙끙 앓았다. 음주는 정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증된 숙취해소 라인업이 맥주와 하이볼의 조합 앞에서 무너질 줄은 몰랐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술이 잘 들어가고 몸이 안 좋으면 주량보다 한참 덜 먹어도 고생한다. 곁들인 안주나 같이 마신 술 때문에 뜻밖의 숙취를 만날 수도 있다. 캐나다에서 귀국한 친구의 축하 술자리에서 와인을 마시고 크게 고생했던 적이 있다. 넷 다 숙취로 인해 고통스러운 아침을 맞이했다. 와인 자체도 숙취가 심한 술인데 그날 먹은 안주가 궁합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그 후로 우리는 두 번 다시 와인을 먹지 않는다.


 술이 대한 좋은 추억보다 숙취로 고생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는다. 지나면 고생도 추억이 되지만 숙취의 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술 때문에 크게 고생한 후에 친구들과 나는 즐겁게 마시는 법을 찾은 것 같다. 고깃집에서 술이 사람을 잡아먹은 그날 이후 우리의 술자리는 달라졌다. 한동안 새롭고 맛있는 술을 찾아다녔다. 다양한 지역의 막걸리를 마셨고 그 후에는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즐겼다. 여행을 갈 때면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술을 샀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술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졌다. 안주를 선택하는 안목도 늘었고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마셨다. 앞으로도 우리들의 술자리는 즐거울 것 같다. 뜻하지 않게 찾아올 숙취를 경계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술을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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