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은 영혼까지 살찌워준다
추억을 담고 있는 음식은 맛있다. 지난 시절의 찬란함과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음식의 맛은 혀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즐겨 먹었던 음식은 특별한 추억을 담고 있는 소울푸드가 된다. 내게 있어서 그런 소울푸드는 바로 ‘쟁짜’다. 친구들과 나는 쟁반짜장을 쟁짜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불렀다. 20대 중반이었던 우리는 거의 매주 토요일 저녁에 모여 쟁짜 4인분을 시켜 나눠 먹는 모임을 즐겼다.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나 주말 아르바이트로 가끔 토요일 저녁의 특별한 의식을 지키지 못할 때는 일요일 오후에라도 꼭 넷이 같이 모여 쟁짜를 먹었다.
우리가 즐겨먹던 쟁짜는 대각이라는 이름의 동네 중국집 대표메뉴였다. 대각은 흔한 동네 중국집이었지만 한 가지 차별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푸짐한 양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짜장면을 시키든 짬뽕을 시키든 단품이든 세트메뉴든 푸짐하다 못해 넘치는 양의 음식을 내놓았다. 만원이면 먹을 수 있었던 2인분짜리 쟁짜는 다른 동네 중국집 쟁반짜장의 3인분보다 많은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했다. 그래서 대각의 쟁반짜장은 쟁반짜장이 아니라 쟁짜였다. 푸짐한 양과 넘치는 인심이 깃든 우리들 사이의 고유명사로 불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양을 담느라 건더기는 듬성듬성 썬 양배추와 시금치 그리고 양파가 전부였다. 가끔 돼지고기 몇 조각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쟁짜를 정말 사랑했다. 지금까지도 내가 음식에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쟁짜가 유일하다.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과 학자금 대출을 갚는 사회초년생에게 1인분에 5천 원짜리 쟁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쟁짜는 배고픈 20대 중반 남자 네 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메뉴였기에 우리 중 누구도 대각에서 쟁짜 외에 다른 메뉴를 거론하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도 쟁짜는 다른 메뉴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늘 맛있었다. 접시 가득 면을 덜어 단숨에 후루룩 삼켜도 큰 대접에 수북하게 쌓인 쟁짜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덩치 큰 남자 넷이 적어도 각자 세 번은 덜어먹어야 그제야 바닥을 보였던 쟁짜는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넉넉하게 위로해주는 음식이었다.
푸짐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면이 모두 사라지고 가느다란 채소 건더기와 손톱 반만 한 돼지고기 조각 몇 개가 대접에 남으면 우리는 밥을 시켰다. 늘 “밥 한 공기 추가요.” 라고 주문했지만 그 때마다 주인아주머니 손에 들려있던 밥공기는 높다란 능선을 자랑하는 고봉밥이었다. 분주한 숟가락 두 개가 밥알 사이사이 짜장이 골고루 스며들게 만드는 동안 나머지 두 숟가락은 서비스로 가져다 준 짬뽕국물을 번갈아 입에 떠 넣었다. 허겁지겁 밥을 입에 떠 넣는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아주머니의 얼굴, 부족하면 말씀하세요라는 아저씨의 한마디까지. 푸짐한 쟁짜처럼 따뜻했었다. 우리는 쟁짜를 먹으며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웠다. 가벼운 주머니를 단 의기소침한 청춘에게 쟁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상이 내민 위로였고 인정이 담긴 구원이었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의 영혼까지 살찌워준다. 가시처럼 앙상하게 말라있던 자신감과 고단한 삶에 위축되어있던 정신을 먹여 살려준 쟁짜. 그리고 힘겨운 삶의 순간들마다 함께한 나의 세 친구들. 이 둘은 지나간 나의 20대 중반에 깃들어있는 식지 않는 온기와도 같다. 시간이 흘러 대각은 이미 사라졌고 우리가 주말마다 즐겨먹던 쟁짜는 기억 속에 남은 음식이 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다른 중국집에서 쟁반짜장을 먹었지만 쟁짜가 품고 있던 맛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MSG가 잔뜩 들어간 짜장 소스에 부실한 건더기, 기계로 뽑은 밀가루 면만 수북이 쌓여있던 쟁짜는 분명 보잘 것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불투명한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힘겨워하고 생활의 고단함에 지친 네 남자의 몸과 마음을 배불리 먹여준 고마운 음식이기도 했다.
때때로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그 시절의 쟁짜가 생각난다. 기름 냄새 베인 누런 벽지의 중국집. 일주일간 잔뜩 쌓여있던 근심을 털어버리고 넷이 함께 배불리 먹었던 행복한 식사. 부른 배를 두드리며 중국집 문을 나설 때는 뭔지 모를 자신감과 든든함에 행복했다. 그 때 든든하게 영혼을 살찌워준 쟁짜가 있었기에 우리 네 사람은 험난한 길을 선택했음에도 굳은 심지를 가지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