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의 라디오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의 아름다움

by 김태민

목요일의 늦은 밤 분당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드문드문 섬처럼 멀리 떨어져있는 정류장을 오가는 광역버스의 좌석은 텅 비어있었고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도시를 빠져나와 톨게이트를 지나 속도를 올리자 반짝 거리는 불빛들이 작은 점에서 선이 되어 길게 이어진다. 허리를 단단히 죄고 있던 안전벨트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고 좌석을 뒤로 젖혀 편하게 몸을 기댄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던 그 때 스피커에서 들리는 음악에 귀가 반응한다. 귓바퀴를 휘감고 들어온 멜로디는 청신경을 지나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추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10년도 훨씬 넘은 지난 시절의 흐릿한 기억이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자 나는 그 속에서 매일 밤 라디오를 즐겨듣던 17살 무렵의 나를 발견한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사연을 보내거나 이벤트에 응모하는 열혈 청취자는 아니었지만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라디오를 들었다. 다이얼을 돌려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나면 방송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약속이라도 한 듯 울려 퍼졌다.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 들었던 라디오는 시시한 드라마나 코미디보다 훨씬 흥미로운 미디어였다. 라디오 속에는 언제나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멋진 음악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처음 접한 뮤지션들의 신선한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이 세상에는 좋은 명곡들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라디오를 통해 접한 음악들은 이제 인생의 플레이리스트가 되어 여전히 내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음악이 주는 감동과 기쁨을 처음으로 알려준 것이 아마 라디오였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스탠드를 켜고 노트를 펼쳐 가수와 노래 제목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나씩 메모한 노래들이 긴 목록이 되어 mp3 플레이어를 가득 채웠던 순간의 뿌듯함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아직 청춘의 푸릇함도 찾아오지 않은 서투른 나이의 감성을 살찌워준 명곡들이 있어 나는 행복했었다. 음악뿐 만 아니라 디제이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흥미로운 이야기 역시 내게 큰 기쁨이었다. 남중남고라는 팍팍한 공간에서 움츠리고 있던 감성을 차분하게 위로해준 메세지들. 낯선 이름의 작가들이 남긴 아름다운 문장을 소개해준 라디오가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책을 찾아 읽으며 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팍팍한 입시생활로 방전된 감성을 충전해줬던 매일 밤의 라디오. 라디오는 나의 감성을 키워준 하나뿐인 스승이었다.

오랜만에 듣게 된 시그널 음악 덕분에 나는 집으로 오는 동안 오래된 추억의 아련함과 따뜻함을 한껏 느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달라지고 변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라디오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익숙함이 지루함으로 취급 받는 세상에서 꾸준함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온 라디오. 내가 잊고 사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키워주고 마음을 달래주었을 라디오. 사람에게서도 느끼기 힘든 한결같은 태도에서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느꼈다. 많은 것들이 변해도 결코 자기 자리를 잃지 않은 존재가 갖는 아름다움. 매일 같이 찾아주던 손길이 없어도 멀리 떠나 함께였던 시절의 기억을 잊고 살아도 라디오는 그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언제나 빛을 주는 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준 것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버스 안을 채우고 눈을 감은 승객들은 도착하기 전까지 짧은 선잠을 잔다. 음악은 팝에서 재즈로 바뀌고 광고타임을 끼고 몇 개의 사연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사이 처음 듣는 괜찮은 노래 몇 개를 메모장을 꺼내 적어본다. 어플을 활용하면 단 번에 가수와 제목 그리고 앨범까지 찾을 수 있지만 일부러 펜을 사용해 적는다. 들을 때 마다 좋은 음악을 소개해주던 라디오의 친절함을 다시금 느끼면서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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