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가는 것
집 앞 도로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연둣빛 이파리를 달기 시작하는 4월의 봄날. 24도를 넘긴 기온은 초여름과 닮아 봄날의 노곤함을 잊게 만들었다. 오전 내내 붙잡고 있던 글을 덮어놓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얇은 스웻셔츠에 편한 신발을 신고 이어폰을 챙겨 대문을 나선다. 한 낮의 태양이 제법 따가운 햇살을 쏟아낸 탓인지 거리에서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마주친다. 공원 입구의 편의점에 들러 탄산수를 사서 마시면서 걷는다. 한참동안 공원산책로를 따라 걷다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여유롭다 못해 한가로운 오후. 푸릇푸릇한 가지 끝에 머물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건너편 고층 빌딩 유리창 너머 일하는 사람들을 향한다. 몇 번이나 음악을 다시 듣는 동안 유리창 너머의 그 누구도 공원 쪽으로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두꺼운 유리 한 장이 서로 다른 세상을 나누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치열했고 나는 게으름에 가까운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문득 주말 근무와 야근을 옵션으로 제시하며 내게 꽤 많은 월급을 약속했던 회사가 떠올랐다. 백수를 선택하는 나에게 인사담당자는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한 세 번쯤 살면 남들처럼도 살아보고 남들 하라는 대로도 살아볼 텐데 한번뿐이니까 하고 싶은 걸 하려 구요.” 기가 찬다는 표정을 대답대신 확인하고 나는 돌아서서 나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다. 버는 게 사라졌지만 쓰는 걸 줄이면 그만이었다. 가진 건 없지만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각박한 생활이지만 나는 한없이 여유롭고 또 자유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과 여유는 엄연한 선을 두고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루 두 번 시계 바늘이 원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일하고 출퇴근 하는 생활패턴에 소모되는 시간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남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 있게 퇴근 후의 남은 시간을 여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점에 산처럼 쌓인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얼마 되지 않는 그 시간마저 치열하게 계획을 세워 쓰라고 종용한다. 열심히 산다는 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몸값을 올리는 일이라면 여유로운 삶은 몸값을 올리기보다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은 자유다. 행복은 상대적이니까 어느 쪽의 삶을 택하든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또렷한 한 가지 방식이다.
여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단어들 중에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이직을 고려하는 주변의 지인들이 이상적인 직장의 조건을 꼽을 때 항상 빼놓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단어는 엉터리다. 우리 삶은 열심히 일하는 만큼 행복해질 시간도 필요로 한다. 여유는 노동과 열정에 대한 당연한 보상인 것이다. 이 당연한 보상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왜곡된 풍경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굴절된 시야각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뜨거운 열정과 한결같은 성실함은 여유에서 비롯된다. 쉴 새 없이 벼를 베다보면 제 아무리 날카로운 낫이라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쉼표가 없는 글은 아무리 뛰어난 명문이라도 사랑받을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 글에 달릴지도 모를 비난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하루 종일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본인의 적성과는 동떨어진 업무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마저 없다면 그 삶은 얼마나 갑갑할까. 일을 하느라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져야할까. 퇴근 지하철 손바닥 위의 스포츠 중계와 현실을 마취하는 밤 10시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답일까. 더 높은 곳을 향해 경쟁하며 살아온 시간들을 햇수로 꼽아보면 금세 양손가락이 모두 접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때때로 힘겹고 외로운 세상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막막함은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일까. ‘힘들다’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소주 한 잔을 털어넣으며 삼키는 사회인들을 나는 응원할 수밖에 없다. 매일 반복되는 여유 없는 삶을 꿋꿋이 살아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아있구나.’ 라는 충만함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원래 사는 게 다 그렇다고 말하는 조언을 가장한 꼰대 질은 거짓말이다. 이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삶은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일수는 없다. 사회의 상식으로 굳어진 여유 없는 삶이 인간으로 태어나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은 아니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바쁘고 치열한 삶 가운데 행복이 태동하기 위해서 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유로운 삶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게 잘못된 착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행복을 구매하는 사회 대신 여유를 누리며 일할 수 있는 삶 그 자체가 행복임을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소득을 통해 구매 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 안가 사라진다.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지속적인 기쁨을 준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자유. 사소하지만 사소하게 취급받아선 안 되는 이런 것들을 여유로움 속에서 저마다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여유 있는 삶이 상식으로 받아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