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봄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온다

by 김태민

눈길이 닿는 곳마다 활짝 핀 벚꽃이 가득하다. 환한 햇살아래 산들거리는 바람이 불면 꽃잎은 팔랑거리며 나비처럼 이곳저곳을 날아간다. 국회의사당을 끼고 길게 뻗은 꽃길은 꽃 반 사람 반. 길고 긴 겨울을 기다려 만끽하는 봄날은 달다. 1년이라는 시간의 기다림이 만개한 가지마다 사람들의 눈길이 머문다. 흐드러지게 핀 꽃에 시선을 빼앗기자 분주한 발길들은 가던 길을 멈춘다. 꽃비가 내리는 고운 봄날은 길어야 2주가 안 되겠지만 그 짧은 순간은 함께한 이들과 만든 추억으로 1년 내내 아름답다.

봄날은 짧다. 그래서 참 각별하다. 새하얀 벚꽃이 활짝 필 무렵이면 함께 꽃을 보러가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1년 사계절 365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2주간의 짧은 순간을 함께하고픈 사람을 생각한다. 꽃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꽃길을 걸으며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은 두 배가 된다. 함께 꽃을 보러가자는 말에 돌아온 약속을 잡자는 답장이 반갑고 기쁘다. 봄날은 짧지만 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또 다시 피어나면서 아름다움을 남긴다. 목련이 질 무렵에는 벚나무 가지의 꽃눈이 움튼다. 벚꽃이 이지러지고 나면 라일락과 아카시아가 피어날 준비를 마친다. 하나가 저물면 또 다른 하나가 피어나 그 자리를 채운다.

며칠 새 제법 햇살이 뜨거워졌다. 가로수 가지 끝 아무도 모르게 돋아난 손톱만한 이파리를 보며 초여름을 떠올린다. 봄날이 점점 멀어져간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났다. 봄은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계절이다. 얼마 남지 않은 계절이 사라지기 전에 소중한 사람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면 봄을 타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봄노래를 들으며 꽃이 활짝 핀 거리를 걷는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사람과 나란히 발을 맞춰 걷는다. 그 때 맑은 하늘 아래 꽃잎이 눈처럼 흩날린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같이 웃는다. 아이도 어른도 연인과 가족들까지 탄성을 지르며 아름다운 봄날의 한 때를 즐긴다. 모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 채 봄이 바람을 타고 지나는 풍경을 바라본다. 나도 웃고 내 옆의 당신도 웃는다. 벚꽃보다 하얀 피부 위로 번지는 고운 미소가 예뻐 꽃을 보고 있던 눈길을 돌린다. 꽃도 예쁘고 당신도 예쁘다. 아니 벚꽃보다 당신이 훨씬 더 예뻤다.

꽃을 보며 걷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못 본 사이 있었던 재미난 일.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 그 사이 몇 번 눈길이 마주치며 질문과 대답 대신 웃음이 오고 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한 가운데 찬란한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꽃잎이 몇 개 떨어져있는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당신이 조잘거리며 이야기 하는 동안 나는 그 옆모습을 보고 있었다. 꽃을 보러가서 한참을 당신의 얼굴만 보다가 왔다. 시선은 더 아름다운 것을 향해 꽂힌다. 그것은 본능이다.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봄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온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가슴이 포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가지 끝 마다 활짝 핀 꽃도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는 당신의 얼굴도 모두 다 봄날처럼 아름답고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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