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소비하는 문화

by 김태민

어떤 죽음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연일 이슈를 만들어낸다. 생전 그 사람이 쌓은 업적과 이미지는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결정하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고 슬픔을 통감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지탄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다. 거리가 먼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애도에 조건이 붙고 조의를 표현하는 것조차 찬반으로 의견이 갈리는 죽음. 그런 죽음을 볼 때마다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다리 건너 접하는 부고는 황망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지만 생전 만난 적 없는 유명인의 죽음은 허망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삶을 보고 떠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감정과 선택이 갖는 의미를 가늠할 수 없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서로 다른 길은 나란히 평행선으로 이어져있을 뿐이다. 떠들썩한 죽음은 가십거리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뉴스링크를 메신저로 공유하면서 비극을 관람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시대는 탄생과 죽음도 콘텐츠로 만들어버렸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이슈와 가십을 쥐어짜 내는 역할을 하다 간다. 죽는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은 소란스럽다.


여러 뉴스채널은 같은 내용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다. 새로운 정보가 있는 것처럼 각색할 뿐 특별한 것은 없다. 눈길을 끌고 관심을 집중시키고 논란과 의혹을 증폭시키면서 돈을 번다. 이목을 끄는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죽음은 돈이 된다. 시청률과 함께 광고단가도 오른다. 조회수가 늘어나면 수익도 따라온다. 이슈를 먹이 삼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유튜브 콘텐츠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추모를 이용해서 자기 할 말을 내뱉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죽음은 계산적인 욕망의 디딤돌이 된다.


늘 그렇듯 사람들의 관심사는 일시적일 뿐이다. 이슈를 빠르게 소비하고 나면 금세 무덤덤해진다. 눈길을 끄는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대중의 시선과 손가락은 이동한다. 그때가 되면 썰물이 빠져나간 휑한 갯벌처럼 조용해진다. 논란과 스캔들이 나타날 때까지 잠시동안 평온한 상태가 된다. 이슈는 태풍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 거센 바람과 세찬 비를 뿌리는 태풍은 이동하면서 힘을 모두 잃어버린다. 영원한 것은 없다. 반짝이는 것들은 언젠가 빛을 잃고 초라한 등불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떠들썩한 죽음이 몰고 오는 이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처럼 사그라든다. 사람은 떠나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소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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