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by 김태민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더니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가득했다. 한 주간 이어진 한파 끝에 포근한 함박눈이 내렸다. 몇 년 만에 찾아온 화이트크리스마스다.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폰을 끼고 let it snow를 들으면서 옥상에 쌓인 눈을 쓸었다. 하얀 겨울 햇살을 받은 눈은 유리알처럼 영롱하게 반짝였다. 계단을 내려가서 골목길의 눈을 치우려고 했더니 벌써 눈 사이로 길이 나와있었다.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늘 게 뻗은 길을 걸으면서 양쪽으로 번갈아 빗질을 했다. 대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면서 옆집으로 나가는 길도 냈다. 빗질을 할 때마다 하얀 눈가루가 폴폴 날렸다. 흥겨운 캐럴을 들으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쓸고 있는 상황이 꼭 영화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멋진 타운하우스는 아니자만 집집마다 나와서 눈을 쓰는 풍경은 참 정겹다. 이왕 빗질을 하는 김에 대로변까지 눈을 치웠다. 옆집 아주머니를 만나서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평범한 일요일 아침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다.


집으로 들어와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커피를 곁들여서 먹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서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캐럴을 틀었다. 창 밖으로 하얀빛에 둘러 싸인 공원이 보였다. 아이들은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동화처럼 예뻤다. 눈이 내려앉은 침엽수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 멋질 것 같았다. 높게 솟은 우듬지에 노란 별을 올려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행복은 참 사소하고 소박한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린 눈이 뭐라고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소유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누리는 행복은 아무리 작아도 기억에 남는다.


몇 년이 훌쩍 지나더라도 2023년 12월 24일의 행복한 아침을 기억할 것 같다. 행복한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행복한 추억은 평생을 간다. 삶을 기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먼 훗날의 성공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 내일도 눈이 내린다고 한다. 몇 년 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나면 옥상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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