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실패는 지나가고 고통은 잠잠해진다

by 김태민

여러 번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여름의 푹푹 찌는 무더위나 패스트푸드점의 사진과 다른 햄버거. 간발의 차로 지하철을 놓쳤을 때의 짜증. 토라진 여자 친구가 내뱉는 “오빠가 뭘 잘못했는데?” 같은 말. 나이를 먹어도 이런 것들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그건 아마도 실패가 주는 고통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실패의 기억을 갖고 산다. 시간이 지나 경험이란 이름으로 삶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실패의 기억도 있지만 떠올리기도 싫은 아픔으로 여전히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를 싫어하고 실패가 주는 고통을 두려워한다.

크든 작든 실패는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그리고 고통의 크기가 작든 크든 사람들은 실패 앞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금전적인 손해나 사람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것과 별개로 실패가 주는 아픔은 고통의 크기만큼 내면의 자신감을 깎아내린다. 날카로운 발톱이 할퀴고 간 자리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의 위로나 오랜 친구가 사는 술 한 잔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게 어른이고 살다보면 질 때도 있는 거라는 말은 사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세 살배기 어린애나 나이 지긋한 노인이나 실패를 맛보면 똑같이 고통스럽다. 자신감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실패로 인해 상실된 자신감으로 인한 아픔은 늘 한결같다.

결국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모든 실패는 언제나 아플 수밖에 없다. 그게 정상이다.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이나 비법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점의 자기개발서 코너에 베스트셀러 딱지를 붙이고 있는 책들은 전부다 거짓말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저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담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방법은 결코 나의 실패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몇 마디의 위로와 몇 줄의 명언으로 실패의 고통에서 벗어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고민과 걱정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폐 몇 장으로 교환할 수 있는 자기개발서의 위로는 어디까지나 지불한 값어치에 충실한 마취제나 마찬가지다.

실패가 주는 고통은 아무리 많이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은 고통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고통스러울 때면 소리치고 괴로워하며 결국엔 저항한다. 그리고 저항에서 비롯되는 행동들이 쌓이면서 아픔은 점점 잠잠해진다. 패배가 주는 극심한 통증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또렷했던 존재감을 상실한다. 물론 몇몇은 만성질환과도 같은 저릿함을 주기적으로 보내오지만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던 처음의 대단한 위세는 찾아볼 수 없다. 실패의 고통은 익숙해질 수 없지만 동시에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픔에 맞서는 끝없는 저항을 지속하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하면 내면의 무의식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실패라는 이름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때로는 긴 한숨으로 때로는 혼자 마시는 소주 몇 잔으로 또 때로는 오래전의 잊혀진 결심을 떠올리는 것으로 고통에 저항하며 사람은 끝내 살아남아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인생을 역전시켜줄 거라고 믿었던 기회를 날려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나뿐인 사람을 떠나보내고, 소중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을 잃으면서 까지도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삶을 지속해나간다.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자고 친구들을 만나 웃고 울면서 계속해서 살아간다. 그 사이사이 고통은 실패와 함께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살아남을 것이다. 패배의 고통을 낫게 해줄 치료제는 아마 영원히 찾지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저항하면서 저마다 자기만의 면역력을 키워낼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모두 사람이란 이름을 달고 삶의 마지막까지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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