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회고전을 보러 왔다.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설렘을 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덕에 미술관에 개관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도록에서 본 그림들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장욱진의 그림은 친절하고 따뜻하다.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 주는 아기자기한 존재감은 언제 봐도 참 편안하다. 성취를 과시하거나 철학을 전시하지 않는 그의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 그림을 처음 그리던 대학시절이나 지금이나 장욱진을 향한 애정은 여전하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전시실을 돌아보다 낯익은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장독대와 까치를 그린 장욱진의 초기작품 <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꼭 10년 만에 다시 보는 그림이다.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장욱진의 <독>을 봤던 1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갈라진 표면에서 느껴지는 세월감과 화면을 가득 메운 장독대가 주는 강렬함이 대비를 이루는 그림이었다. 10년의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고 그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예술은 거울이다. 그림 속에 비친 나를 봤다. 나만 변했다. 똑같이 세월을 맞았지만 나만 달라졌다. 평생 동안 한 길을 묵묵히 걸었던 사람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며 반성했다.
매일 들여다보는 거울 속에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늘 똑같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내면의 풍경은 많이 낯설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자신의 이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때마다 나는 예술이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늘 같은 모습으로 변함없는 감동과 울림을 주는 작품을 보면 삶을 비춰보게 된다. 장욱진의 <독> 앞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봤다. 한 자리에 오래 서서 세월을 읽고 시간을 들여다봤다.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초라한 결심과 부끄러운 신념을 돌아봤다.
그림은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할 때 위로가 되었던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치열하게 혹은 처절하게 살라고 말해준 권진규의 테라코타. 소박하고 진실된 예술의 가치를 알려준 장욱진의 그림까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말해주는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 10년 후에 다시 <독>을 본다면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때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그림은 작가의 삶을 담는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닮는다. 장욱진을 꼭 빼닮은 그의 작품처럼 나와 내 삶을 담은 그림을 꾸준히 그려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