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ua

by 김태민

연휴 내내 장욱진 회고전을 보기 위해 덕수궁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실에 들어서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를 들으면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림을 따라 걸었다. 좋은 책이나 인상적인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 고운 선율에 집중하다 보면 번잡한 상념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때 비로소 일상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Aqua>는 제목처럼 물과 같은 음악이다. 들으면서 마음을 씻는다. 깨끗하게 손을 씻는 것처럼 마음을 닦는다.


여전히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남미의 신비한 자연을 건축에 담은 리카르도 레고레타를 좋아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청다색으로 표현한 윤형근의 그림을 동경한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역시 자연을 품고 있다. <rain>의 피아노리듬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닮았고 <tong poo>는 불어오는 바람이 만드는 풍경을 담고 있다. 산이나 바다를 찾을 때마다 그가 남긴 명곡을 듣는다. 맞잡은 손의 익숙한 온기에 위로를 받는 것처럼 평온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속삭이며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을 때처럼 매번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은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과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과 장욱진의 그림을 통해서 큰 위안을 얻었다. 많은 말이나 좋은 글보다 그림과 음악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오늘이 꼭 그런 날이었다. 생각이상으로 많은 힘을 받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미술관을 나와 궁내를 느긋하게 걸었다. 게으른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오후의 덕수궁은 정말 아름답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풍경은 그림만큼 극적이고 음악처럼 감동적이다.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진다. 기술은 매일 혁신을 거듭하면서 눈부신 성취를 자랑한다. 느림이 옛것으로 취급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 번씩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조급함이 나를 재촉할 때마다 느리게 성장하는 나무 같은 예술을 가까이 두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나는 무거운 종이책을 끼고 산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오른손은 온통 얼룩덜룩한 빛깔로 물든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 품고 있는 긴 호흡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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