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까지 내리던 가느다란 빗줄기는 이제 는개가 되어 온 세상을 하얗게 적시는 중이다. 곧 3월이 온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지만 벌써부터 봄을 기다리게 된다. 일기예보 앱을 눌러서 주간 날씨를 확인한다. 영하 4도까지 떨어지는 날이 한두 번쯤 남아있지만 괜찮다. 이미 혹한기는 끝났다. 진눈깨비나 송이눈을 대신해서 찾아온 안개비는 봄비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지난주 한낮 기온은 17도까지 올라갔다. 이튿날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지만 오후의 햇살은 봄처럼 따뜻했다.
어렸을 적부터 안개를 좋아했다. 새하얀 안개와 함께 는개가 내리는 날에는 창 밖의 풍경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공원을 지나는 사람들이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멀리서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행렬의 배기음이 들렸다. 까치와 까마귀가 날갯짓을 하며 안개비를 털어내고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물기를 머금은 벚나무 가지 끝에 달린 새순에 눈길이 닿았다. 겨울은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집 밖으로 나와 공원을 산책했다. 비에 젖은 흙에서 숲의 냄새가 났다.
계절은 비와 함께 찾아온다. 여름은 장대비를 뿌리며 달려들고 가을은 이른 새벽 몰래 이슬비와 같이 온다. 차가운 부슬비가 메마른 가지에 몇 개 남아있는 낙엽을 털어내면 그 위로 겨울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봄은 늘 안개처럼 고운 는개를 몰고 온다. 익숙한 풍경이 모두 하얀 안갯속에 잠겨있다. 내리지 않고 흩날리는 는개비는 소리 없이 세상을 적신다. 비와 안개는 부드러운 지우개처럼 겨울이 만든 흔적을 천천히 지워나간다. 비와 함께 기다리던 봄이 다가오는 중이다.
작은 빗방울이 바람에 흩날리다 볼에 닿았다. 바람도 빗물도 차갑지 않았다. 비는 겨우내 메말라있던 산과 들을 깨운다. 며칠간 흐린 날이 이어질 것 같다. 마지막 남은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 든다. 겨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겠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봄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한겨울에 입던 옷가지를 모아 세탁소에 맡겨야겠다. 다음주가 지나면 맥코트를 꺼내 입어도 될 것 같다. 자주 가는 동네 채소가게는 벌써 딸기를 들여놨다. 글을 쓰고 나면 딸기를 두 팩 사 와야겠다. 이제 곧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