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오래전의 나는 일이 맘이 갑갑하고 속상할 때면 옥상으로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새까만 밤하늘 위로 드문드문 보이는 별빛은 도시의 불빛에 비하면 희미하다 못해 초라했다. 맹렬하게 빛을 쏘아 올리는 도시의 불빛은 밤늦도록 그칠 줄 몰랐고 북극성 언저리의 별 몇 개만이 간신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봄이나 가을이나 긴 겨울과 여름밤에도 늦은 밤 도시 위로 뜨는 별은 몇 개 되지 않아 늘 애처로웠다. 바람만 세게 불어도 가느다란 별빛은 흔들리고 날이 조금만 흐려도 별들은 모습을 감춰버렸다. 초라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불안한 20대였던 나는 나와 별빛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감이나 열정 같은 것들이 소모품과 다를 바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개인이 가진 강점과 고유한 가치는 숫자로 평가받았고 한 사람이 품고 살아왔을 소망이나 꿈은 젊은 날의 치기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었고 이런 상식을 사람들은 현실이라 불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는 것은 견딜 만 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참 어려웠다.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은 언제나 무서웠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되묻는 것이 두려웠다.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나 대단한 사람들이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모습에 금세 주눅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렇게 20대의 나는 불안했고 나약했고 비뚤어져있었다.
모두가 덤덤하니 아무렇지 않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유난히 힘든 시절을 보내는 내가 나약하게 느껴져 부끄러웠다. 그 때마다 가슴 속에 담아둔 고민과 걱정을 누군가에게 말하기보다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란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아예 입을 꾹 닫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갑갑할 때면 늦은 밤 혼자 조용히 밖으로 나와 한참동안 별을 쳐다보다 들어갔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고 옅은 구름만 드리워도 빛을 잃어버리는 별이 꼭 나 같았기 때문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 도와줄 수도 손을 건넬 수도 없는 처지도 꼭 닮았기에 감정이입을 하기엔 충분했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흔들리는 별빛처럼 나약하고 불안했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멀리 도망치기도하고 현실에 적응해야할 순간이 오자 체념하듯 내가 있어야할 자리로 끌려갔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살겠다는 열정은 몇 번의 실패 끝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청춘이란 단어에 염증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내 청춘이 끝났구나 싶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뒤로하고 혼자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럴 때면 언제나 옥상에 올라가 별을 바라봤다. 마음은 갑갑했고 현실은 답답했다.
술기운에 별을 바라보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 꽤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는 늦은 새벽에 눈을 떴다. 밤하늘로 빛을 쏘아대는 도시가 잠든 시간. 짙은 남색 빛의 새벽하늘에는 간밤에 볼 수 없었던 별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북극성 언저리 떼어놓은 밥풀처럼 애처롭던 별들은 사라지고 새하얀 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빛은 하얗다. 바람에 흔들리는 불안한 회색빛이 아니라 아침 7시의 맑은 태양처럼 새하얀 빛이 본래의 별빛이다. 불 꺼진 가로등과 좁은 골목 깊숙이 내려온 새벽의 그늘은 새까맸지만 하늘의 별들은 햇살을 잘게 쪼개 뿌려놓은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별들은 옆으로 죽 늘어서서 긴 선을 만들었고 책에서만 보던 별자리들을 구경했다.
도시의 불빛에 밀려나 불안하게 떨던 별들은 자신들의 빛을 맹렬하게 뿜을 시간을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새벽의 별빛은 밝고 아름다웠다. 타오르는 네온이 뿜어내는 도시의 불빛에 가려 초라하게 숨죽이던 시간을 견디고 별들은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몇 번의 실패 앞에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진 나와 별은 반대였다.
그 날 나는 주위가 환해지기 전까지 새벽의 별빛을 한참동안 구경했다. 새하얀 별빛을 보고 느낀 감동을 남기고 싶었던 나는 손 놓고 포기했던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그림에 어울리는 글을 몇 줄 쓰면서 글을 쓰는 일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여전히 현실은 어둡고 이상은 저 멀리에 있다. 나의 재능이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걱정이나 근심은 구름처럼 결국에는 나를 지나쳐 가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내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때가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므로 지금처럼 앞으로도 내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싶다. 서투르고 부족해도 좋다. 부족함은 극복해낼 수 있고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불안은 바쁜 일상에 희석되기 마련이다.
나의 지난 20대는 이 깨달음을 지금의 내게 안겨준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고 간절한 염원 끝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삶은 길다. 긴 밤의 끝에 새벽이 올 때 까지 별들은 자기 자리를 지켰고 나 역시 내 자리를 지키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기다릴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