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삶이 곧 드라마다."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나는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장르는 무엇일까 하고. 로맨틱코미디라고 부르기에는 철저한 싱글이라 핑크빛 시너지가 부족하고 스펙타클한 액션을 하기에는 몸이 잘 따라주지 않을 것 같다. 대학에서 배운 거랑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면서 배고픈 생활을 하고 있으니 휴먼드라마가 어울릴까 싶지만 극적인 감동을 운운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어리지는 않지만 충분히 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다. 새파란 20대 초반의 젊음은 아니지만 새로운 꿈도 꿀 수 있고 망상이든 공상이든 남몰래 가슴에 담아 키울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인생을 16부작 미니시리즈라고 생각해본다면 아직 내 삶은 지금까지 5회 정도 분량밖에 뽑아내질 못했다. 처음부터 발단과 전개 그리고 위기와 결말가지 모두 결정된 게 아니라면 삶을 하나의 장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삶은 드라마와는 다르다. 순간의 선택에 의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 인생에 있어서 드라마에나 어울리는 분류법은 어울리지 않는다. 각자의 선택에 따라 나타나는 다채로운 삶의 풍경들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규정지을 수도 없고 주류와 비주류를 쉽게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결정권은 오직 자신에게만 주어져있다. 크랭크인을 시작하는 일도 새로운 선택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결정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변화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지만 굳이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단 하나뿐인 드라마의 '감독'이며 동시에 '주인공'이다. 뜻하지 않게 비극으로 시작된 드라마를 극적인 전개를 통해 반전시킬 힘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 재방송도 다시보기도 없는 철저한 라이브 드라마에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떠밀려오듯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의 현실은 이제까지의 무수한 선택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초반부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비극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다면 지금부터 새로운 선택과 시도를 통해서 결말을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나의 선택에 따라 삶의 스토리는 가변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자존감을 어떤 상황에서든 똑바로 붙잡고 있어야 한다. 현실을 언제든 변화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자존감이라는 권리를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주인공에서 조역으로 그러다 톱니바퀴처럼 수동적인 단역으로 떨어진다. 주인공으로 태어나 이름 없는 단역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일을 포기하고 거대한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여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 타인이 만들어준 장면 안에 부여받은 역할을 하는 것이 직접 삶을 살아가는 일보다는 훨씬 수월하겠지만 그건 사는 게 아니라 주어진 운명에 ‘순응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마음에도 중심이 있다. 중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 마음의 중심은 삶은 내 것이라는 자존감에서 비롯된다. 물론 스스로의 삶에 대한 또렷한 확신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면 세상이 정해준 배역을 연기하며 사는 사람과는 다른 분명한 의지를 삶에 투영해낼 수 있다. 그러다보면 시련이 희망으로 반전되기도 하고 수많은 실패 끝에 성공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도 있다. 고심하고 도전하고 자기 확신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실패할 수는 있어도 결코 패배하지는 않을 테니 끝내 성공할 것이다.
정답 혹은 모범답안이라고 세상이 정해놓은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자. 히어로물이 잘 나간다고해서 쫄쫄이를 입고 방패 하나만 들고 냅다 뛰어들면 행복해질까? 아니다. 히어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나도 모르게 세상에 빼앗겼던 삶의 결정권을 지금 되찾아오자. 단역이나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