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과 MBTI

by 김태민

한국에서 MBTI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상에 버금가는 과학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 한창 유행할 때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이제 거의 사회적인 통념으로 자리 잡았다. 학부 전공 수업시간에 MBTI를 배웠을 때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통용될 줄은 몰랐다. 혈액형 성격론이 몰락하고 MBTI가 득세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ABO 식 혈액형이 갖는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모든 인간은 네 유형으로 구분하는 시대는 20년 넘게 이어졌다. 피가 타고난 특성과 후천적인 선택까지 결정한다는 논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생학과 꼭 닮았다.


혈액형을 종교처럼 신봉하는 신도를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나면 다들 혈액형을 먼저 물어봤다. B형 남자는 바람둥이라거나 A형은 소심하다는 말은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실소가 나오지만 그때는 혈액형이 과학이자 상식이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자 혈액형이 만든 우생학을 추종하던 한국인들은 MBTI로 옮겨 탔다. 어느새 MBTI는 성격과 궁합 심지어 인성까지 판별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적 분석을 통해 탄생한 과학에 사람들의 욕망이 들러붙으면 유사과학이 된다.


혈액형이나 MBTI를 통해 사람들은 소속감을 얻으려고 한다. 나와 같은 유형에 속하는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공감대가 조성된다. 그리고 소속감과 공감대는 사람들 간의 정서적인 거리를 좁히면서 안정감을 형성한다. 언뜻 보면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배타성이 숨어있다. 동질감을 조금만 비틀면 적개심이 된다. 공감대를 뒤집으면 배척하는 대상을 걸러내는 기준이 된다. 부정적인 내용을 강조해서 사람을 공격하는 도구로 악용할 수도 있다. T와 F를 나누는 이분법은 친한 사이에는 농담이지만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낙인으로 돌변한다.


유형화는 어디까지나 가벼운 유머로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취하면 편견과 선입견을 만드는 루머를 양산해 낸다. 행동을 왜곡하고 발언을 일반화하다 보면 고정관념에 갇히게 된다. 몇 가지 특성만 가지고 사람을 정의하게 되면 오해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I 같은 E도 있고 E 같은 I도 있다.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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