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베이다

by 김태민

도서관에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겨울이 되면 추리소설을 탐식하는 편이라 미스터리와 스릴러물을 지난달에 여러 권 신청했다. 운동을 마치고 나와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대출실에서 회원정보를 확인하고 책을 받았다. 신간이라 그런지 책배와 책 등 까지 깨끗했다. 새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산뜻한 잉크냄새는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이마무라 마사히코의 신간은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집에 가서 느긋하게 읽으려고 했지만 못 참고 의자에 앉아서 책장을 펼쳤다.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는 기괴한 저택이 등장하는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다.


10분쯤 책을 보다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신간이 꽂혀있는 서가를 둘러봤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책표지를 자랑하는 단편소설집과 에세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가 귀엽게 느껴졌다. 에세이집을 한 권 꺼내서 책장을 넘기다 손 끝을 베였다. 따끔한 감각이 불빛처럼 빠르게 점멸하며 사라졌다. 살갗 위로 가느다란 실선이 생겼다. 가느다란 틈 사이로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 피는 손금 사이를 타고 번지다 금세 멎었다. 어쩌다 한 번씩 종이에 손을 베일 때가 있다. 날붙이는 조심해서 다루지만 책을 읽을 때는 방심한다.


책을 읽다 손가락을 베이는 일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우연에 불과하다. 조심성이 없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우연은 이유 없이 발생한다. 그리고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손가락 끝에 남은 작은 생채기는 며칠만 지나면 새살로 뒤덮일 것이다. 손을 씻거나 운동할 때 한 번씩 따끔하겠지만 아픔은 찰나에 불과하다. 우연은 삶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기억에 남지 않을 만한 사소한 일에 감정을 싣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00% 좋은 일이나 100% 나쁜 일은 없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다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좋은 일화도 글이 되고 나쁜 사건도 글이 된다. 행운과 불행은 한 몸이다. 두 가지는 늘 함께 온다. 집으로 돌아와서 책을 마저 읽었다. 기대한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저녁으로 볶음밥을 만들어먹고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타자를 칠 때마다 미세하게나마 통증을 느꼈다. 계속해서 키보드를 누르다 보니 금세 괜찮아졌다. 잘 먹고 푹 자면 상처는 금방 아물 것이다. 상처는 사라지고 글은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혈액형과 MB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