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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r 21. 2024

갈매기와 잉어

 점심을 먹고 안양천 근처를 산책했다. 햇살을 맞으며 광합성을 하고 있는데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갈매기 한 마리가 강 가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잘못 봤나 싶어서 근처로 자리를 옮겨서 다시 확인했다. 흰색과 회색빛으로 물든 깃털, 갈고리처럼 굽어있는 노란 부리와 매서운 눈. 갈매기가 분명했다. 가장 가까운 바닷가는 지하철로 1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오이도다. 서해 바다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는 안양천에 갈매기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누군가 갈매기를 집에서 키우려고 잡아왔다가 놓친 걸까?  거리를 혼자 이동해서 날아왔을까? 아니면 서해에서 올라오는 활어차를 타고  것일까? 갈매기는 사냥한 잉어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오리 여러 마리가 수면 위를 배회하고 있었지만 갈매기 주변을 피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성인 남자 허벅지 만한 잉어는 배를 보인채 널브러져 있었다. 뱃살을 거의  뜯어 먹혀서 내장이 드러나있는 제법 처참한 상태였다. 주변으로 작은 박새나 참새들이 기웃거렸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테니 갈매기의 식사가 끝나고 나면 잉어는 작은 새들의 차지가  것이다. 새들은 굳이 먹이를 독식하지 않는다. 배를 채우고 나면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물들이 적지 않다.


 명학역 5분 거리에 있는 안양천은 잉어가 많이 산다. 햇살이 수면 아래를 비추는 정오 무렵이 되면 물살을 따라 유영하는 잉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잉어를 건드리는 포식자는 없었다. 겨울철 안양천을 찾는 백로나 두루미가 잉어를 사냥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갈매기는 달랐다. 갑자기 나타나서 유유히 물가를 지나는 잉어를 잡아먹었다. 죽음은 늘 우연을 가장하고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찾아온다. 갈매기의 날카로운 부리가 급소를 파고들기 직전까지 잉어는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평화로운 하천에서 태어난 잉어는 천적을 모르고 살았다. 갑작스러운 일격을 당하면서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숨통이 끊어지기 전에 바라본 낯선 생명체의 모습을 보고 잉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처럼 사고하지는 않았겠지만 본능적으로 커다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공포는 모든 동물에게 존재하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잉어는 현실에 순응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발버둥 치면서 숨결이 꺼지기 직전까지 저항했을까? 본능적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생존본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은 어떤 본능이 작용한 결과일까?


 관찰자의 입장이 되면 결과를 두고 과정을 해석할 수 있다. 생명이 사그라드는 죽음조차도 관찰의 대상이 된다.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분석하고 기록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먹이사슬 아래 속한 모든 동물들은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한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초식동물도 살아있는 식물을 뜯어먹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조차 같은 미생물을 잡아먹는다. 죽음은 자연계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죽음을 제한하고 통제하려고 애쓴다. 벤치에 앉아서 글을 쓰는 동안 갈매기는 사라졌다. 작은 새들이 남은 잉어를 먹어치우고 있다. 죽음은 삶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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