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곳에 몰트 위스키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가 문을 열었다. 한국인은 술과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카페 하나 건너 술집이다. 정신없이 바쁜 시대는 커피가 사랑을 받지만 호황과 불황은 술이 더 큰 사랑을 받는다. 시장이 폭등할 때는 일확천금에 취해서 마시고 경제가 바닥으로 내리꽂으면 신세를 한탄하면서 잔을 채운다. 미국 증시가 폭등하고 비트코인이 전고점을 넘어섰지만 경제가 회복세로 들어섰다는 느낌은 없다. 체감물가의 벽은 여전히 높고 피부에 와닿는 현실은 차갑다 못해 괴로운 수준이다.
물론 서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IMF때나 서브프라임 때나 똑같이 힘들었다. 코로나 시기나 지금이나 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서민을 위한 나라나 태평성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냉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래서 현실이 괴로울수록 사는 게 버거울수록 사람들은 술을 찾고 의지한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위스키 바에 가는 사람도 있다. 바에서 쓸 돈을 아껴서 대형마트 주류코너를 찾는 사람도 있다. 같이 마시든 혼자 마시든 술을 마시면서 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살면서 한 번도 힘들 때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술에 관한 내 원칙은 딱 하나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마시는 것이다. 이유 없이 술을 입에 대거나 의미 없는 술자리에 참석하는 일은 없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술을 찾는 사람도 많다.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일로 고심하는 친구와 함께 대작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사는 게 힘들어서 내 손으로 술을 마신 적은 없다. 술은 어디까지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하는 의미로 곁들이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위스키는 친구들과 30대 내내 함께한 축하주의 대명사였다. 다들 좋은 날에는 위스키를 찾았다.
위스키는 적당한 허세와 만족감의 밸런스가 잡힌 술이다. 애호가들은 여러 외래어를 써가며 위스키를 즐기면서 찬미한다. 알아가면서 흠뻑 빠져드는 것도 술을 즐기는 방법이다. 순댓국에 곁들이는 소주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위스키는 맛보다는 멋이 있다. 와인이나 브랜디 같은 술도 비슷하다. 향과 풍미를 설명하는 어려운 전문용어나 다양하고 복잡한 음용법까지 다들 비슷하다. 페어링이라고 부르는 조합도 닮았다. 샴페인에 곁들이는 딸기나 위스키와 함께 먹는 초콜릿 그리고 와인의 친구 치즈까지. 코냑이나 아르마냑은 시가를 곁들인다고 했던 것 같다. 직접 마셔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향미가 강한 음식을 선호하지만 술은 예외다. 어떤 술이든 매니큐어 리무버 향이나 병원 주사실 소독약 냄새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위스키 향이 예외다. 주당 친구들이 한 번씩 좋은 술을 들고 나타나서 설명을 해줄 때가 있다. 과일에서 시작해서 캐스크가 품고 있는 나무향과 탄내 그리고 가죽 냄새까지. 술 한 잔에 온갖 사물이 다 들어있다. 설명을 듣고 마시면 정말 그 향기가 난다. 그러나 늘 마지막에 혀 끝에 남는 건 알코올이 풍기는 강렬한 존재감이다. 아무리 좋은 향을 품고 있어도 끝은 늘 매캐한 술냄새가 남는다.
한 해동안 술을 마시는 날은 다해봐야 열 번 내외다. 비싼 술도 좋은 술도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함께 마시는 사람이 중요할 뿐이다. 소주 한 잔을 나눠마셔도 좋은 사람이 있고 값비싼 위스키를 들고 와도 어울리기 싫은 사람이 있다. 음식은 안 가리고 먹는 편이지만 사람은 가려서 사귄다.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확실히 까탈스럽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속내를 비추는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밑천이나 밑바닥은 술이 취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속내를 드러낼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술과의 거리 두기는 이제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