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마치고 맥도널드를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매장 내부를 둘러보다 해피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달 해피밀 장난감은 귀엽게 DC코믹스 캐릭터 인형이었다. 악성재고가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DC코믹스를 좋아할 만한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미취학아동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집계가 무의미할 것 같다. 아동을 대상으로 나온 프로모션 상품치고 너무 센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블조차 인피니티 사가 이후 처참하게 몰락했다. DC코믹스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DC코믹스 캐릭터는 해피밀 장난감으로 자주 나오는 편이다. 그때마다 매번 ‘대체 이걸 누가 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요 없는 공급이다. 타임워너와 디즈니는 미국 캐릭터 산업의 양대산맥이다. DC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망해버렸지만 워너는 해리포터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다. 바비와 오펜하이머 그리고 웡카의 연타석 홈런으로 영화 시장에서 입지도 탄탄하다. 그러나 주요 소비자를 아동으로 한정한다면 워너는 디즈니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PC이슈로 디즈니가 망가지긴 했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주요 IP는 여전히 굳건하다.
디즈니는 마블유니버스 캐릭터들을 귀엽게 데포르메 해서 해피밀 상품으로 찍어낼 필요가 없다. 미키마우스를 내세우면 그만이다. 소비자에게 어필할 목적으로 IP를 굳이 수정하고 손댈 필요가 없다.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IP는 눈에 띄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언맨이나 다스베이더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배트맨이나 조커도 유명하지만 귀엽게 리뉴얼한다고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인지도가 낮으면 일단 낯설다. 아이들은 애정과 취향이 확고하다. 뭔지도 모르는 캐릭터를 그림체 좀 귀엽다고 반기지 않는다. 벅스버니 같은 루니툰 시리즈를 내세워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타임워너는 디즈니에 대한 묘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뒤틀린 열등감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어두운 이미지를 버리고 디즈니 같은 쾌활함을 가지려다 악수를 뒀다. 결국 DC코믹스와 신비한 동물사전 두 프랜차이즈를 영화화해서 크게 실패했다. 무턱대고 따라 하느라 정체성과 독창성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후발주자는 잘해야 모방 못하면 아류라는 낙인이 붙는다. 남이 잘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낫다. 장점을 기르는데 쓸 노력을 강점을 강화하는데 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DC코믹스만의 강점이다. 어두운 색채를 지닌 만큼 철학적인 키워드와 사회문제들을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식에 관한 세밀한 묘사는 디즈니가 넘볼 수 없는 DC의 경쟁력이다. 시니컬한 히어로들을 억지로 귀엽게 만들어서 아이들을 타깃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 호아킨 피닉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조커 같은 장르물에 힘을 주는 편이 더 낫다. 디즈니를 보던 아이들도 자라면 성인이 된다. 핫초코를 즐기던 나이가 지나면 알코올을 찾게 된다. 어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두운 세계관은 대체불가능한 콘텐츠다. 결국 수요는 알아서 따라온다.
남들이 잘하는 걸 따라가려면 삼류에서 시작해서 잘해봐야 이류에 그친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일류로 남을 수 있다. 좋은 점을 참고하는 태도는 필요하지만 정체성을 버리고 따라 하다 보면 강점을 상실하게 된다. 어설프게 디즈니 캐릭터를 따라 해서 만든 해피밀 장난감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워너는 DC시네마틱 유니버스나 신동사 시리즈의 실패를 다시 돌아봐야 할 것 같다.